레비어 더비 – 당신이 원했던 그 경기 [디 애슬레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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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어 더비 – 당신이 원했던 그 경기 [디 애슬레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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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5월 15일 기존 블로그에 포스팅했던 글을 겨온 것입니다.
루르 더비라고도 불리는 레비어 더비는 독일 루르 지역 7개 축구 클럽간의 경기에 대한 총칭이지만 주로 가장 치열한 도르트문트와 샬케의 경기를 일컫는다. 라인강의 기적의 중심 지역인 루르 탄전 지대를 대표하는 두 팀의 더비는 1925년 첫 경기로부터 [젊은이들의 패기를 상징하는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 [노동자들의 정신을 담고 있는 샬케 04] 선수와 팬들 모두 많은 의미와 사연을 가지고 있다.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 샬케 04의 레비어 더비

토요일 있을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 샬케 04의 180번째 만남은 차원이 다른 레비어 더비가 된다: 독일에서 가장 치열한 리그 경기는 지그날 이두나 파크에서 관중 없이 치러진다.

 

양 팀의 강경한 서포터들이 이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까? 그리고 이 더비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본지는 마르크 쿰부쉬(독일의 편집장, 다큐멘터리 제작자, PD. 도르트문트의 팬이며 만드는 컨텐츠도 대부분 축구 이야기)와 토마스 ‘톰스’ 윙스(독일의 변호사, 샬케 04의 팬)와 함께 독일 축구계의 유서 깊은 더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라파엘 호닉스타인: 토마스는 샬케를 응원하며 법적인 조언이 필요한 팬들을 돕는 변호사입니다. 마르크는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설립자에 대한 영화를 만든 프로듀서입니다. 당신들은 어떻게 만나게 되었습니까?

 

토마스 윙스: 우리는 도르트문트 근교의 비텐이라는 도시에서 함께 자라왔습니다. 문제는 그 지역에 살던 거의 모든 사람들이 1970년대 후반에 도르트문트를 응원했다는 것이예요. 그리고 나는 그 클럽을 응원하지 않는 매우 적은 이들 중 하나였죠. 학교에서도 정말 쉽지 않았어요.

 

마르크 쿰부쉬: 토마스는 내 오랜 친구입니다. 그러나 순수하게 축구의 측면에서, 우리는 의견을 같이한 적이 절대로 없었고 여전히 그렇습니다. 내 아버지와 모든 가족은 BVB의 엄청난 팬이예요. 심지어 축구에 크게 관심 없는 이들도요. 아버지는 임신한 어머니를 도르트문트에 있는 병원에 태워다 주셨어요 – 아버지는 내가 그 도시에서 태어나길 원했기 때문이죠. 출생 증명서에 도르트문트라고 적혀 있는 게 자랑스럽습니다.

 

토마스: 내 딸이 태어난 날에, 나는 샬케 방향으로 운전대를 돌렸어요.

 

마르크: 어린 아이가 태어난 첫 날에 미래가 완전히 망쳐지는 것을 보는 건 슬픈 일이죠.

 

토마스: 걘 되게 행복해요. 안부 인사 감사합니다.

 

도르트문트와 샬케가 처음부터 적은 아니었어요. 언제부터 라이벌 의식이 시작되었고 왜 그런 겁니까?

토마스: 샬케가 1958년에 우승컵을 따내고 돌아오는 길에 도르트문트에서 열차를 갈아타자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어요. 이게 우리 할어버지가 해주신 말이예요. 1960년대에는 상황이 좀 바뀌었습니다.

 

마르크: 축구 클럽에 대한 팬 문화는 1960년대에 독일에 자리잡았고 1970년대에 널리 퍼지기 시작했어요. 이 때부터 가장 가까운 이웃들과 자신을 구별하는 것이 중요해졌어요. 축구는 또한 사람들의 삶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어요. 경기를 보러 가는 것이 단순히 의례적인 것은 아니었죠.

 

샬케가 1997년에 UEFA 컵을 우승했을 때, 우리는 챔피언스리그 타이틀을 땄죠 – 그들은 항상 우리보다 한 발짝 뒤쳐져 있는 거예요 – 평화는 끝났어요. 양 팀의 군중들은 모두 “Ruhrpott, Ruhrpott(루르 지방이라는 뜻으로, 양 팀은 모두 루르를 연고로 한 팀이다)!”를 연호했고 사람들은 주점에서 섞였어요. 그 때 자라난 사람들은 자연스레 샬케를 싫어하게 됐죠.

 

토마스: 그 챈트 연호는 실제로 있었지만 사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지는 않았어요. 나는 개인적으로 도르트문트가 1990년대에 가장 형편없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그들이 챔피언스리그를 우승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죠.

 

그 더비가 얼마나 중요한가요?

마르크: 난 그걸 싫어해요. 만약 이기면, 기억에 남을 만한 아름다운 경기가 되는 거예요. 근데 지면, 그건 지옥입니다. 난 어떤 더비든 0-0이 됐으면 좋겠어요. 만약 그 바보들이 승리를 기념하거나 하는 짓을 하지 않았다면, 그냥 놔뒀겠죠.

 

토마스: 그 더비는 나에게 있어서 시즌의 모든 것이예요. 맞아요, UEFA 컵이나 DFB 포칼이 있어요. 하지만 나는 1년 내내 더비가 있으면 좋겠어요. 이게 여러분들이 갈망하는 겁니다.

 

더비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억은 무엇인가요?

마르크: 아버지는 내가 4살이었을 때 처음으로 경기장에 데려갔어요. 이렇게 어렸을 때의 일은 거의 기억하지 못합니다 – 샬케가 1988년에 추락하는 것은 정말 대단했어요(1987-88 시즌 샬케는 분데스리가에서 최하위로 강등). 긴 시간 동안, 우리가 파르크 스타디온(펠틴스 아레나 이전 샬케의 홈 구장)에 가면 항상 지는 것 같은 느낌이 있었어요. 나는 그 주 스탠드에서 고래고래 응원하다가 경기장에 난입하는 사람들과 휘날리는 스카프, 그리고 노래하는 이들을 싫어했어요. 사실 샬케에 대한 것은 모두 싫어했죠.

 

토마스: 그 열성적인 팬들은 더비의 큰 지분을 차지했어요. 그들은 경기장에 가끔씩만 들어갔었죠. 나는 우리가 강등당했던 1987-88 시즌의 한 더비 경기를 기억하는데, 그 날 내 삼촌이 결혼식을 했어요. 세레머니 직후에 나와 내 여동생은 경기장으로 향했죠. 멀리서부터도 함성 소리를 들을 수 있었어요. 우리는 후반전을 공짜로 지켜봤고, 샬케가 이기는 걸 본 뒤 결혼식에 다시 돌아 갔어요. 또다른 좋은 기억은 1990년대에 얀스 레만이 도르트문트에서 극장골을 터트렸던 거예요. 그는 지공 상황에서 골을 넣은 첫 골키퍼였죠. 정말 재밌는 경기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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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 나는 샬케가 우리를 베스트팔렌스타디온에서 우리를 끌어내리려 했던 걸 기억해요. 아마 1988년이었을 겁니다. 정말 생생하게 기억나요. 그리고 겨울 휴식기 동안에 실내 축구가 인기 있었던 시절이 있었는데, 나는 당시 세 명의 샬케 팬들 옆에 앉았어요. 우리는 서로에게 모욕적인 발언을 하는 시간을 보냈고 주먹질 직전까지 갔지만 결국은 굉장히 잘 마무리되었어요. 세 시간 동안 함께 있으면,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꽤나 많은 공통점이 있다는 걸 알게 되죠.

 

토마스: 실내 축구는 굉장히 유명했어요. 중립적인 장소에서 경기가 치러졌음에도 문제가 없지는 않았죠.

 

마르크: 하지만 라이벌리가 예전만큼 위험한 정도는 아니에요. 겔젠키르헨(샬케 연고지)에 가면 정말 공포감이 느껴지던 때가 있었죠. 옛날과 비교하면 거의 뭐 유치원 수준이예요.

토마스: 우리는 수년 동안 몇 차례의 물리적인 충돌을 봐왔어요. 그러나 경찰은 이런 실랑이들을 과대 선전하는 경향이 있어요. 훨씬 더 잔혹하고 폭력적이었던1970년대와 80년대와는 완전히 달라요.

 

라이벌리가 축구를 초월하는 정도인가요? 20마일 정도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두 도시의 사이도 별로 안 좋나요?

마르크: 겔젠키르헨은 개같은 곳이예요. 나는 이걸 보루시아의 팬으로서 말하는게 아닙니다. 거긴 죽어가는 도시예요 –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떠나고 있죠. 도르트문트는 좀 다른 이야기를 갖고 있습니다. 여긴 미래가 있는 도시예요. 나는 우리가 진짜로 겔젠키르헨을 깔보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추잡한 도시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죠.

 

토마스: 이건 단순한 축구에서의 경쟁 의식이 아니예요. 예를 들어 나는 도르트문트에 쇼핑을 하러 가기 전에 2번, 3번은 다시 생각하죠. 가능하면 다른 곳을 갈 거예요. 내 삶에서 노란색 물건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마르크: 보셨죠. 이게 도시 차이예요. 누가 겔젠키르헨에 쇼핑하러 갈 생각을 합니까? 거길 갈 이유는 하나도 없어요 – 축구 때문이 아니라면요. 사실 그것도 견디기 어려워요.

 

이 더비가 특이한 점은 두 도시 뿐만 아니라 루르 지방 전체에 영향을 준다는 점인데요…

마르크: 그렇죠. 여기 살면 노란색 아니면 파란색과 흰색이 섞인 걸 선택해야 되요. 도르트문트와 샬케가 모든 걸 지배하고 있는 거죠. 직장이나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이러한 것들에게 끊임없이 노출돼요. 출구는 없습니다. 이 지역에서 태어나지 않은 도르트문트 팬들은 바이에른 뮌헨을 가장 큰 라이벌로 보는 경우가 많아요. 샬케에 대한 감정이 훨씬 더 강한데 말이죠.

 

토마스: 마르크와 나는 항상 함께 하지만 더비가 시작하면 서로를 엄청나게 모욕하기 시작하죠.

 

최근에 있었던 최고의 더비 경기는 무엇이었나요?

토마스: 내 사무실 벽에는 브라질 수비수 날두의 대형 포스터가 걸려 있어요.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도르트문트가 2017년에 하프타임까지 4-0으로 이기고 있었고 곧 5-0이 될 것 같았어요. 하지만 상황은 급변했고 날두가 경기 막판에 머리로 동점골을 넣었고 결국 4-4로 경기가 끝났죠.

 

샬케의 날두가 2017년 11월 도르트문트를 상대로 4번째 골을 넣는 장면이다

 마르크: 샬케가 리그에서 연승하는 것을 우리의 구장에서 막아 버린 2007년 5월의 2-0 승리가 있었어요. 나는 그걸 보고 거의 기진맥진해버렸죠. 그리고 2008년 위르겐 클롭의 첫 더비 경기 때, 우리는 전반전까지 3-0으로 지고 있었어요. 케빈 쿠라니(전 샬케 스트라이커)의 슛이 빗나가 버려 4-0이 되지 않았죠. 그리고 우리는 이후 3점을 득점해 결국 무승부를 만들어 버렸어요. 그 4-4 경기와 비슷하지만 추격한 팀은 달랐던 경기예요.

 

토마스: 그게 뭐가 비슷해요! 아 그리고 이것도 생각나네요: 우리는 지난해에 도메니코 테데스코 휘하에서 어려웠을 때에도 도르트문트의 우승이라는 꿈을 부숴버렸죠. 정말 재밌었어요.

마르크: 그건 2007년 5월과는 비교도 안 됩니다. 4-4가 안타까웠다는 건 인정하지만 당신들이 우리의 연승을 멈춘 건 아니었어요. 우리는 그냥 좀 안 좋았고, 당시 샬케는 연승 중이었죠.

 

양 팀이 무관중 경기를 치르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나요?

토마스: 그건 꽤나 슬플 거예요. 아마 신나는 감정이 거의 0에 가까울 거라고요. 2001년 9.11 테러가 발생한 뒤 4일 뒤, 샬케는 도르트문트와 홈 경기를 치렀어요. 경기장에는 아무런 광고도 없었고 경기 전에는 클래식 음악을 틀기만 했죠. 경기장은 꽉 차 있었지만 아무도 경기에 흥미를 가지지 않았습니다. 정말 조용했어요. 모두가 당시 세계에 일어나던 일에 대해서 걱정하고 있었죠. 결국 경기는 슬프게도 득점 없이 끝났어요. 내가 두려워 하는 것은 토요일에도 이런 상황이 나오는 겁니다.

 

마르크: 그건 더비가 아니죠. 축구도 아니예요. 그건 절대로 우리가 아는 축구가 될 수 없어요. 더비는 상대에게 굴욕감을 주고, 경기를 직접 두 눈으로 즐기며 서로의 경기장에서 모욕한 뒤 친구들과 함께 승리를 기념하는 거예요. 만약 더비에서 볼이 골망을 흔드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그건 더비가 아닙니다. 그냥 다른 스포츠예요.

 

토마스: 똑같이 생각합니다. 더비는 경기장 안팎에 있는 60,000에서 80,000명이 미쳐가는 감정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물론 그 경기는 보겠지만, 그냥 호기심 같은 게 있어서 그런 거예요. 그게 어떤 느낌인지 알고 싶거든요. 하지만 희열 같은 건 없을 겁니다. 팀들이 그것에 대해 완전한 준비를 했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약간 도박 같은 느낌이 들 것 같아요. 토요일에 우리가 3-0으로 이긴다면 많은 기념 문구들이 있겠지만 그게 진정한 마음에서 나오는 건 아니겠죠. 현재로서는 좀 많이 걱정돼요.

 

마르크: 우리가 올 시즌 1위를 차지하면 꽤나 끔찍할 거예요. 우승을 해도 그걸 제대로 축하할 수는 없는 거죠.

 

토마스: 이번 시즌은 고전적인 샬케의 시나리오대로 흘러갈 수도 있었어요. 수십년 만에 처음으로 리그를 우승해도 축하하지 못했겠죠.

 

마르크: 샬케는 리그 우승 못해요. 이건 그냥 자연의 섭리 같은 거죠. 그러나 만약 그들이 리그를 우승하게 되면, 이번 시즌에 하는게 가장 좋았을 거예요. 나는 거의 신경쓰지 않았을 겁니다.

 

토마스: 모두가 고통받고 있어요. 그리고 축구에도 재정적인 문제가 생겨 어려움을 겪게 됐어요. 예를 들어 샬케는 서포터들에게 티켓에 대한 변상금을 포기해달라고 요청했죠.

 

마르크: 하지만 몇몇 사람들은 샬케가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파산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어요. 그건 꽤 끔찍할지도 모르지만,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나는 웃을 겁니다.

 

토마스: 나는 도르트문트가 강등이 되도 신경쓰지 않을 거예요. 그런 일은 머지않아 다시 일어날 거니까요. 그러나 한편으로 나는 더비를 많이 그리워할 것 같네요.

 

마르크: 나는 샬케가 1980년대에 2부리그에 있었던 걸 기억합니다. 그 때 나는 더비를 거의 그리워하지 않았어요! 만약 샬케가 내일 해체되면,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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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링크: Raphael Honigstein 2020.05.14

(사진: 디 애슬레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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