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21일 기존 블로그에 포스팅했던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10번롤이 다시 한 번 사라졌다. 자신이 원래 선호했던 상대 라인 사이 중앙에 위치하지 않고 3톱의 우측에서 안쪽으로 들어오는 롤을 맡아 에버튼 커리어를 환상적으로 시작한 하메스 로드리게스도 그렇게 말한다.
“나는 언제나 10번이라면 팀 전체를 컨트롤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하메스는 올 여름 리오 퍼디난드의 유튜브 인터뷰에서 말했다. “10번은 동료들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야 하고, 득점 찬스를 만들 수 있어야 하며, 골을 넣을 수도 있어야 하고 동료들의 플레이를 돕기도 해야 합니다.”
“[하지만] 모두가 4-4-2나 4-3-3 시스템을 돌리기에, 이제는 10번이 되고 싶다는 아이들을 찾기 힘들어요. 감독들이 1대1 스킬을 갖고 뛰어줄 수 있는 빠른 선수만을 원하기에 10번은 배제된 거죠… 그래서 넘버텐은 이제 그리 유용한 선수가 아닙니다. 15년, 20년 전에는 모두가 10번을 원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더 복잡합니다.”
1년 전 디 애슬레틱과 인터뷰를 가졌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후안 마타도 비슷한 의견을 내비쳤다. “순수한 10번은… 뭐라고 해야 하죠? 멸종했다? 뭐 멸종까진 아니라고 해도, 전보다 줄어든 건 확실하죠.” 마타는 말했다. “과거에는 언제나 1톱이나 투톱 뒤에 순수한 넘버텐이 있었어요.”
“이제는 시스템이 달라지면서 그 포지션도 약간 다른 쪽으로 진화했지만, 나는 10번에서 뛰는 선수들을 좋아해요. 타고난 재능으로 살아남아 놀라운 패스나 다른 누구도 보지 못하는 걸 봄으로써 경기를 바꾸는 선수들 말입니다.” 마타는 특히 후안 카를로스 발레론과 후안 로만 리켈메 같은 선수들을 더 이상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한 분석은 10년, 20년 전에도 모두가 똑같이 말했던 것이다. 2000년대 전술의 발전 리뷰(역주-콕스가 조널 마킹 시절 2010년에 쓴 글이다) 들은 유럽 축구계에서 파블로 아이마르와 리켈메 같은 선수들이 진정한 거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애석함을 표했다.
2006년 쓰여진 리처드 윌리엄스의 ‘The Perfect 10’ 이라는 책의 도입부에서는 공격수들에 대한 신체적인 요구가 증가했다는 이유를 들면서 “오늘날, 진정한 10번을 찾기란 그 어느 때보다 어렵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그보다 더 과거, 그러니까 20세기까지로 가면, 당신은 미셸 플라티니가 넘버텐 역할에 대해 이야기한 인터뷰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현재의 축구에서는 매우 적은 수의 선수들만이 이 유형에 속하죠.” 그는 말했다. “이런 선수들은 사라져가고 있어요. 나는 지네딘 지단이 정말 잘해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더 많은 감독들이 그와 같은 선수들을 기용하면 좋겠어요. 바르셀로나도, 레알 마드리드도 진짜 10번을 보유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유로 2000에서는 지단, 후이 코스타, 프란세스코 토티, 데니스 베르캄프를 내세운 팀들이 4강에 진출했다. 그들은 모두 당신이 찾길 바라는 – 활동 반경에 대한 약간의 해석 차이가 있을 수는 있어도 – 정통 10번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실제로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하메스는 ’15, 20년 전’의 10번들을 회상하며 말한 것인가? – 플라티니가 똑같이 15, 20년 전의 10번을 그리워했던 때 말이다. 넘버텐은 어떻게 사우스 파크의 케니보다 더 자주 죽는 것인가? (역주-사우스 파크는 미국의 코미디 애니메이션으로, 이 프로의 등장 인물 케니가 매번 죽는 것이 하나의 레퍼토리다)
일단, 우리가 정통적인 10번을 바라보는 이상적인 시각은 낭만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그런 선수들을 보고 있자면 지난 시절의 회상과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것이다. 지난 20년 사이 축구의 판도는 숨 가쁘게 바뀌어 왔고, 오늘날에는 거의 모든 경기들을 전 세계로 중계해주는 TV 방송과 선수들의 단점을 최대한 강조하는 통계가 자리 잡았다.
20년 전 넘버텐들은 우리의 기억보다 그 위상을 꾸준히 유지하지 못했다. 지단은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 폼 하락으로 고생했고, 베르캄프는 아스날의 여러 리그 타이틀 시즌에 주역으로 활약했지만 그 전에 오랜 기간 동안 힘든 나날들을 보냈으며, 후이 코스타는 밀란에서 완전히 자신감을 잃어버렸던 시기가 있었다. 세리에 A에서는 엄청나게 꾸준한 활약을 펼쳤던 토티마저도 유럽 무대에서의 저조한 실적으로 비판 받았다.
10번 롤이 크게 부각됐던 몇 번의 이례적인 상황들은 – 유로 2000이 좋은 예시가 되겠다 – 꾸준히 이어졌던 적이 없다. 그 때 그 장면들을 우리가 기억하는 것이다. 우리는 유튜브 클립으로 영원히 보존될 지단의 매지션과도 같은 플레이를 기억한다.
우리가 항상 기억하진 못하는 것은 유벤투스가 수비형 미드필더 세 명을 많이 기용했다는 것이다 – 디디에 데샹, 안토니오 콘테, 에드가 다비즈 (아약스에서 선보였던 창의적인 기술을 의도적으로 억제하는 플레이를 했다) 가 그를 보좌했다. 만약 지단이 생각보다 못하기라도 하면, 유벤투스 전체의 퍼포먼스가 가라앉았다. 그래서 중앙의 10번을 믿는다는 건, 팀의 창의력 전체를 그 한 선수에게 맡긴다는 것이다. 언제나 좋은 축구를 할 수는 없는 시스템인 것이다. 우리가 4-3-1-2 시스템을 들으면, 우리는 환상적인 ‘1’을 생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90분을 통틀어 경기를 지배하는 건 열심히 뛰어주는 ‘3’일 때가 많다.
이는 거의 모든 세대가 자신의 때에 사건이 처음으로 일어났다고 생각하는 많은 것들 중 하나일 뿐이다. 20년 전에 비하면 요즘 음악은 쓰레기라고 생각하는 아버지의 생각과 맞먹는 것이다.
축구는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고, 이 진화에서 일관되게 유지된 것은 모든 선수들이 올라운더가 되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세대가 거듭될수록 센터백들은 그 전임자보다 볼을 더 안정적으로 소유한다. 또한 키퍼들도 자신의 라인에서 더 멀리 벗어난다. 그리고 이는 10번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넘버텐도 볼을 소유하지 않을 때 열심히 뛰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때 데쿠는 포르투 시절 놀라울 정도로 성실하게 뛰는 10번으로 떠올라, 새로운 세대의 상징이 되었다 – 그의 감독 조세 무리뉴는 “개인의 창의적인 능력으로 뭔가 만들어 낼 뿐만 아니라 볼을 뺏기면 태클하고 쫓아가며 팀에도 도움을 준다”며 그를 극찬했다. 현재의 기준에서 보면, 데쿠는 정말 게을렀다. 15년 전에는 보기 드물었던 것들도 이제는 일상이 된 것이다.
정통 넘버텐에도 다양한 유형이 있지만, 대부분은 수비적인 책임에서 자유를 부여받으며 때로는 조직적인 전술 구조에서도 벗어나 있는다. 이는 문자 그대로 ‘프리롤’이라고 불리운다. 하지만 이는 최근 10년 간 발전해온 탑 레벨의 축구에서 불가능한 일이다. 물론 최근 몇 년 간 강한 압박에 대한 요구가 그 어느 때보다 커졌지만, 전설적인 트레콰르티스타 중심 전술에서 효과적으로 탈피해 이탈리아에 논쟁을 불러왔던 아리고 사키의 밀란 시절에도 사람들은 위와 같이 생각했다.
요즘 축구를 보는 십대들은 크리스티안 에릭센, 브루노 페르난데스, 카이 하베르츠를 보면서 그들이 완전한 넘버텐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2000년대의 관점에서 그들은 당신이 진정한 10번이라고 생각하는 후이 코스타나 지단에 비해 인내심이나 침착함이 부족하다. 하지만 플라티니도 코스타와 지단이 활동하던 시절 ‘그의’ 세대의 10번들과 비교하며 같은 생각을 했다. 축구는 항상 진화하고, 10번들은 항상 보다 활동적이고 성실하게 뛸 것을 요구받는다.
오늘날의 많은 클럽들이 4-3-3을 쓰기 때문에, 문자 그대로의 10번들은 그리 환영 받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넘버텐의 기술을 그대로 보유하고 있는 선수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많다.
예를 들어, 리버풀을 살펴보자 – 피르미누는 확실히 펄스 나인으로 포지션을 옮긴 10번이다. 사디오 마네는 모하메드 살라가 피오렌티나와 이집트에서 그랬듯이 사우스햄튼 시절 때때로 10번 롤을 맡았다 – 비록 역습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세컨드 스트라이커에 가깝긴 했지만 말이다. 새로 영입된 티아고 알칸타라는 넘버텐으로 자연스럽게 뛸 수 있다.
맨체스터 시티에서 펩 과르디올라가 케빈 데 브라이너와 다비드 실바를 8번으로 함께 기용한 것은 눈 여겨볼 만하다. 왜냐하면 둘 모두 타고난 넘버텐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 또한 그는 종종 역시 10번을 맡을 수 있는 베르나르두 실바까지 기용했다.
물론, 그들은 모두 메수트 외질 같은 전형적인 10번은 아니다 – 그리고 그가 최근 몇 달 동안 아스날의 선발 명단에서 완전히 제외된 것은 10번 롤의 지지자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외질은 넘버텐의 낭만과 거의 떼어 놓을 수 없는 선수다. 그가 다른 역할은 아무것도 맡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상대 라인 사이에 위치하며 결정적인 패스를 넣어주는 데 매우 뛰어나지만, 다른 포지션에 잘 맞는다고 여겨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외질은 전방으로 올라가 골을 넣어주지 못했고, 8번 롤에서도 완전히 잘해주진 못했으며, 측면에서는 수비 부족 문제가 대두됐다. 그가 잘하려면 팀이 그를 중심으로 만들어져야 하고, 그렇게 된다 해도 아마 2015-16 시즌만큼의 창의적이고 명석한 모습은 보여주지 못할 확률이 높다. 따라서 아스날은 그를 중심으로 팀을 짤 합리적인 이유를 갖고 있지 않다.
그래서 외질은 약간 시대에 뒤처진 느낌이 든다. 2010년에는 그가 10번계의 차세대 스타로 여겨졌다는 걸 생각하면 그럴 만하다. 지단 세대보다 빠르고 압박에도 관여한다곤 해도, 외질은 프리롤의 대가와 책임을 가장 잘 알기에 여전히 넘버텐에 가장 적합해 보인다. 팀 전체로부터 자유를 부여받았고 개인적으로 플레이할 권한을 받았지만, 그 자유를 개인 능력에 집중시키기 보다 동료들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 아무리 결점이 있다고 해도, 외질은 이를 누구보다도 잘 이해했다.
다만 그가 미켈 아르테타의 아스날 스쿼드에서 제외된 이야기가 아직 모두 밝혀지진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 선수의 개인적인 문제도 아직 풀리지 않았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게 전술적인 문제보다 더 큰 문제로 보여진다. 하지만, 대단했던 10번들의 역사는 축구 이야기로만 채워지지 않는다 – 언제나 필드 밖에서의 논란이 존재했다. 그들은 피치를 벗어난 후에도 언제나 자유를 가진 것처럼 행동했다. 그 중에는 외질의 중국에 대한 생각이나 거너사우루스 재정 지원보다 외설적인 이야기도 있었지만 그 개념은 완전히 다르지 않았다 – 넘버텐은 항상 뭔가 반골 기질을 가졌다고 여겨진다.
2010년 외질이 새로운 넘버텐의 스타로 떠올라 레알 마드리드로 곧장 이적한 것은 2014년의 하메스와 같았다. 아래로 내려와 중원 숫자를 늘려주고 전진해서 골을 넣을 수도 있으며 필요하다면 측면에서도 뛸 수 있는 그는 외질보다 완벽한 선수였다.
하메스가 에버튼에서 10번 롤을 수행하지 않을 수는 있어도, 이게 무조건 나쁜 일은 아니다. 그는 우측에서 중앙까지 물 흐르듯이 들어오며, 상대의 두 홀딩 미드필더를 지속적으로 상대하는 역할을 맡을 때보다도 더 많은 공간을 찾는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카를로 안첼로티가 한때 세리에 A 시절 사용했던 4-3-1-2처럼 하메스를 도미닉 칼버트-르윈과 히샬리송 바로 아래 중앙에 기용해 볼 수도 있었겠지만, 여태까지 하메스의 활약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그의 측면 포지션이 그를 억제하고 있다고 진지하게 주장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니, 리켈메 유형의 선수들이 탑레벨에서 사라진 것을 애석해 하는 것은 완벽히 합당한 일이지만, 이 상황에 대한 우리의 분석은 15년 전과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당시 조세 무리뉴와 라파엘 베니테즈로 대표되는 수비적인 유형의 감독들은 대개 이런 창의적인 선수들에게 완전한 신뢰를 주지 않았다. 실제로 그들은 10번들에게 어느 정도의 믿음은 줬지만 (무리뉴의 데쿠와 웨슬리 스네이더, 베니테즈의 아이마르) 그들을 제외한 나머지 팀은 압도적으로 수비적이었다.
과르디올라와 클롭으로 대표되는 요즘의 공격 지향적인 감독들은 노골적인 10번을 배치하진 않지만, 그 대신 훨씬 더 다양한 포지션에서 보다 조화로운 팀을 만들어낸다.
2000년대와 2010년대처럼, 넘버텐은 다시 죽었다. 그와 동시에, 그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잘 살아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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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링크: Michael Cox 2020.10.16
(사진: 디 애슬레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