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 9일 기존 블로그에 포스팅했던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2019년 8월 6일. 울브스와 레스터의 2018/2019 시즌 프리미어리그 4대3 경기가 스포티비에 하이라이트로 올라온 날입니다. 저는 러시아 월드컵을 보고 축구에 다시 흥미를 느낀 뒤 응원할 팀을 찾지 못하고 있던 터라 그 경기를 보고 역동적인 것처럼 보였던 울브스의 팬이 됐습니다.
그 경기를 보면 안됐습니다. 오늘 경기를 봤어야 합니다. 누누의 울브스는 보면 눈이 썩는 팀이라는 걸 알았어야 했습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책장 뒤에서 책을 밀어 넘겨서라도 그 영상 시청을 막았을 겁니다. 왜 이런 팀을 선택해 갖고.
정말 망했습니다. 오늘 경기는 단순한 1패를 올린 날이 아닙니다. 우리 울브스의 파훼법을, 전 세계에 UHD로 공유한 경기가 나온 날입니다.
총체적 난국이었습니다. 자세한 리뷰는 다음에 올릴 예정이니, 이 글에서는 간단하게만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만, 일단 중원부터 이야기해 볼게요. 네베스와 덴동커를 쓴 이유는 알겠습니다. 네베스가 볼 풀어주고, 덴동커가 지난 경기처럼 전방에서 볼 잘 이어주고 많은 활동량으로 수비도 도와주길 바랐던 거겠죠. 뭔지 알겠어요.
근데 오늘 이들 중원의 문제는 심각했습니다. 레스터가 오늘 의도적으로 중원 숫자를 늘린 거 같은데, 숫자가 너무 부족하죠. 덴동커가 계속해서 전방쪽으로만 돌았는데, 그러면서 네베스와 공격 사이를 연결해줄 선수가 없었습니다. 중원 삭제 축구가 나온 겁니다. 중간에 이어주는 선수가 없어요.
네베스가 아무리 패스를 잘한다 해도 이걸 다 이어줄 순 없습니다. 이건 3백의 본질적인 문제도 있는데, 중원 조합을 한정적으로 제한해 버리는 3백을 사용했기에 상대의 1차 블록을 오가면서 네베스와 코디 등의 패스를 연결해주는 선수가 거의 없었죠.
덴동커의 활동량도 생각보다 별로였습니다. 공격 올라갔다가도 수비하러 잘 내려와주는 건 맞는데, 레스터처럼 속도감 있는 공격을 하는 팀한텐 무용지물이죠. 더군다나 파트너가 네베스인 상황에서는. 경기 후반 쯤에 매디슨이 덴동커 그냥 제치고 네베스가 카드 받으면서 끊는 장면이 나옵니다. 기동력 얘기는 더 안할게요.
중원 숫자가 부족하니, 탈압박도 잘 안된 게 아쉬웠습니다. 레스터는 후방에서 볼을 탈취하면 멘디부터 푹스, 매디슨 등 간결하게 풀어나오는 선수들이 많았지만, 울브스는 그게 안됐죠. 숫자 부족은 공격에서도 문제가 많았어요. 라울이 볼을 떨궈줘도 중원 숫자가 부족하니 대부분 볼은 상대에게 갔고, 그 제공권 자체도 레스터가 3백을 쓰니 따내기가 힘들었어요.
그러면서 받아주는 롤은 결국 라울과 네투, 포덴세 등 공격 자원들의 몫이 됩니다. 지난 리뷰에서도 말했지만 라울이 내려와주면 공격할 때 문제가 생겨요. 측면으로 빠지고 후방으로 내려오고 하면, 진짜 문전 앞에 골게터가 필요할 때 라울은 이상한 위치에 있게 된다는 겁니다. 덴동커, 포덴세, 네투가 라울만큼 효과적으로 골을 넣을 수 있나요?
그래서 라울이 볼 받으러 내려와주는 건 인정하겠습니다. 뭐 볼 풀어주러 내려온다는데 그럴 수 있죠. 마지막에 라울을 왼쪽 돌게 하고 파비우 실바를 가운데에 배치하는 건 도대체 뭘까요? 실바는 피지컬적으로 완성도 안됐고, 뒤에 누가 있는지도 잘 모릅니다. 굳이 라울을 측면으로 돌게 하는 건 정말 이해가 안됐고.
아다마를 터치라인에서 드리블만 치게 시키는 것도 좀 그래요. 아무리 잘하는 선수라도 여러가지 패턴이 있어야 수비수도 좀 속죠(로벤은 예외로 하겠습니다). 아다마도 이렇게만 쓰다 보니 수비 둘 붙이고 측면 직선적인 루트만 막으면 되는 선수로 전락했습니다.
아다마가 들어오면서 라울, 덴동커가 보다 여유롭게 전방에 머무를 수 있는 건 좋았지만, 솔로 플레이의 영향으로 어쩔 수 없이 네투와 세메두의 공격 관여도가 떨어졌죠. 이건 아다마의 탓이 아닙니다. 터치라인만 주구장창 뚫게 만든 사람 탓이지.
코디가 비판을 받는 건 바로 이런 경기 때문이예요. 자기한테 하나라도 안 맞는 부분이 있으면 활약을 못하는 선수거든요. 미드필더 출신인데 탈압박은 하나도 안됩니다. 바디 하나만 압박 들어와도 바로 볼리 킬먼한테 백, 횡패스 돌려요. 코디 롱패스가 오늘 4개는 나왔나요? 원래 많으면 20개도 나옵니다. 이게 코디 롱패스가 약간 버퍼링 걸리는 것의 영향도 있는데, 그건 나중 글에서 더 얘기하죠.
이 코디의 영향력이 줄어든 건 레스터의 전략이었는데, 저스틴과 루크 토마스를 높게 끌어올리면서 누리와 세메두에게 수비적인 부담을 안겨줬어요. 그러면서 코디와 네베스의 롱패스 선택지도 줄어들었죠. 측면 공격이 잘 안된 것도 로저스의 전술이 컸습니다. 수비 시에 레스터는 5백으로 내려 앉으면서, 코디가 볼을 잡을 때 누리와 세메두가 볼을 쉽게 잡지 못하도록 했어요. 아까 말했듯이 중앙에서는 전진이 절대 안되고, 측면으로 볼을 연결해야 하는데 윙백들은 못 올라가거나 압박 당하고, 볼리와 킬먼을 통한 측면 전진은 속도가 너무 느려서 상대의 압박을 받고 다시 백패스가 나왔죠.
누리를 선발로 쓴 건 누누 잘못이 아닙니다. 저도 누리 선발 보고 좋아했어요. 그냥 선수가 수비를 좀 못한 거죠. 수비 연습 좀 많이 해야 할 겁니다. 그 페널티 내준 파울은 순전히 누리의 잘못이었어요. 리그앙에서 장점이라고 소문 났던 크로스도 아직은 안 보이네요.
네투와 포덴세가 측면이든 하프스페이스든 볼을 잡으면 레스터가 숫자로 밀어붙이는 건 로저스가 정말 잘 선택한 거예요. 둘이 볼 잡아도 돌아설 수가 없으니 후방에서 볼이 넘어와도, 그냥 지공 상황에서도 측면 플레이가 거의 불가능했죠.
이만 줄이겠습니다. 킬먼, 볼리, 파트리시우는 잘해줬습니다. 머리 좀 차가워지면 다시 써볼게요.
요약: 이게 누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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