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29일 기존 블로그에 포스팅했던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오랜만에 리뷰를 쓰네요. 중간에 기분 좋은 첼시 전 승리도 있었고 참 답답한 번리 전 패배도 있었지만(번리 전은 아예 못 봤습니다. 평 들어보면 안 본 게 다행인…) 이번 토트넘 전 무승부는 꽤나 만족스러운 결과네요.
1분 만에 선제골을 허용했으나 이후 89분 동안 더 이상의 실점을 허락하지 않으면서 결국은 승점 1점을 따낸 경기. 손흥민의 100호골을 저지하면서 스포티비 박제를 면한 경기. PL 15라운드 울브스와 토트넘의 경기가 어땠는지 알아봅시다.
라인업
보시면 번리 전 3백에 오타소위를 톱으로 세우는 이상한 전술을 썼다가 한 번 데이고 다시 4백으로 돌아와 파비우 실바를 최전방에 내세웠습니다. 조니, 라울, 볼리, 덴동커가 부상으로 출전할 수 없는 경기에서 이 정도면 쉽게 예상할 수 있는 베스트 11을 냈다고 할 수 있겠죠.
이젠 포덴세가 저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에 서는 게 너무나도 익숙해졌습니다. 이따 더 얘기할 선수의 특성에 잘 맞는 자리를 찾았다고 할 수 있겠죠.
전술과 선수들 이야기
이번 경기에서 크게 드러났던 양상은 토트넘의 은돔벨레가 경기 시작 1분 만에 코너킥 세컨볼 상황에서 득점을 뽑아내면서 무리뉴의 토트넘이 내려앉아서 완전히 잠그기에 들어가고, 울브스가 끊임없이 상대 골문을 두드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울브스가 어떻게 상대를 뚫어낼 수 있고, 그 과정 속에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 알아봐야겠죠?
결론부터 말하면, 결과는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이유를 꼽자면 일단 박스 내에서 해결해줄 해결사(라울)의 부재, 세부 공격 전술의 부족, 그리고 전반적인 결정력 부재 정도 되겠습니다.
라울의 부상은 아마 올 시즌 두고두고 아쉬울 겁니다. 라울보다 뛰어난 스트라이커는 정말 몇 없습니다. 이 선수 이야기만 나오면 저는 언럭키 케인이라고 말합니다. 연계, 패스, 공중볼, 드리블, 키핑, 골 결정력까지 모두 준수하거나 그 이상인 선수가 바로 라울이죠. 4백 시스템으로 바뀐 지금, 만약 라울이 그 선봉에 있었다면 동료들을 더 잘 이용하면서 득점 기회도 많이 얻어냈을 겁니다. 공격 전술이 아무리 부족해도 그 안에서 방점을 찍어줬겠죠(라울은 공격 숫자가 하나 적은 4백 시스템에서도 꾸역꾸역 9경기에서 4골을 득점했고, 이는 아직까지도 네투와 함께 팀내 최다 득점 기록입니다).
세부 공격 전술의 부재는 무리뉴에게도 제기되는 문제고, 이건 무리뉴의 제자 누누도 마찬가집니다. 공격의 대부분을 특정 선수들의 기량에 기대는(토트넘은 손흥민과 케인, 울브스는 라울과 포덴세, 네투, 아다마 등) 걸 말하죠.
이게 요즘 부각되는 이유는 역시 라울이 없기 때문이죠. 라울은 오히려 전술 없이 피치 전체를 뛰어다니면서 골까지 넣어주는 선수였으니까요. 그러나 18살의 실바는 그러지 못합니다. 실바는 지난 몇 경기에서 번뜩이는 장면들을 보여줬습니다. 박스 안에서 튀어나오면서 볼을 받아 슈팅까지 만들어내는 모습들이 꽤 나왔죠. 이번 토트넘 전에선 세메두의 컷백을 수비 사이에서 받아 슛을 때리고, 후반 막판 임팩트는 제대로 되지 않았으나 얼리 크로스에서 헤더를 만들어냈으며, 후반전이 시작된 직후에는 측면 쪽으로 달려나가면서 페널티킥이 선언됐어야 할 파울을 당하죠. 그러나 빠르게 속공을 전개하는 상황에서 실바는 아직 서투른 게 보입니다. 동선이 동료와 겹치면서 네투와 포덴세가 드리블을 한 번씩 더 쳐야 하거나 선택지를 만들어주지 못하는 상황들이 나왔어요. 이런 상황에서 실바에게 좀 더 명확한 지시가 내려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전체적인 결정력의 부족. 앞서 말했듯이 실바에게 많은 골을 기대하기엔 아직 무리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선수들에게 기대를 해봐야 할텐데, 2선의 아다마, 네투, 포덴세는 모두 직접 결정짓기보단 동료의 찬스를 만들어주는 유형에 가깝습니다. 아다마는 지난 시즌 라울의 골을 가장 많이 도운 선수이고, 포덴세는 측면에 배치되던 시절에도 그랬지만 중앙에 온 이후 넓은 시야라는 장점이 더욱 부각되는 전환 패스와 플레이메이킹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네투는 PL 전체에서 7번째로 많은 찬스 메이킹을 한 선수고요(애슬레틱 기사 곧 올릴 겁니다).
예년에 비해 다소 아쉬운 건 미드필더진의 공격포인트 생산력입니다. 지난 시즌 각각 1골 6도움, 2골 2도움, 4골을 기록한 무티뉴, 네베스, 덴동커는 아직 단 한 개의 공격포인트도 만들어내지 못했죠. 네베스는 수비 커버가 좋았고 기본적인 위치 자체가 볼란테니 그렇다 쳐도, 무티뉴나 덴동커는 이쯤 됐으면 하나 정도는 해줬어야 합니다. 특히 덴동커는 박스 침투를 통해서 좋은 위치를 잡고 기회도 좀 만들어낸 건 맞는데, 헤더가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으니…
물론 누누에게도 변명거리는 있습니다. 지난 시즌 전체 득점의 25% 가량을 책임졌던 도허티와 조타가 빠진 부분은 아무리 두 선수가 지난 시즌 울브스에서 워스트 둘이라고 해도 득점 감소 효과는 지울 수 없죠.
그리고 좀 불안했던 부분은 역시 수비죠. 볼리가 빠지고 거의 유일한 전문 센터백 킬먼도 4백에선 누누의 신임을 거의 받지 못하면서 코디와 사이스가 센터백을 서는데, 속도 면에서 크게 밀립니다. 경기 시작하자마자 손흥민한테 뒷공간 내주는 장면이 그걸 잘 보여주죠. 4백으로 하는데 3백에 알맞은 선수들을 넣으니 수비 불안이 계속 나옵니다. 사실 사이스는 4백에도 알맞은 선수인데 문제는 코디…
후방에서 볼을 전진시킬 수 있는 옵션이 별로 없기에 토트넘의 수비에 계속 막히기도 했죠. 코디의 패스는 전 시즌에 비해 상당히 안 좋아졌습니다. 3백에서 4백으로 전환되면서 스위퍼 시절 깊은 위치에서 패스를 뿌릴 수도 없어졌고, 도허티가 떠나면서 우측의 확실한 패스 선택지도 사라지면서 많이 떨어졌어요. 그나마 후반 들어 토트넘의 라인이 조금씩 벌어지고 하프스페이스 쪽으로 직선적인 패스가 조금씩 나오긴 했습니다.
꽤 만족스러운 결과였다고 해놓고 부정적인 얘기만 내내 했네요. 좀 좋은 부분들을 알아봅시다.
공격진들의 개인 기량은 리그 탑급입니다. 네투, 포덴세, 아다마는 최고의 선수들이죠. 네투는 아다마와 달리 드리블로 빠르게 상대를 제끼는 게 가능하기 때문에 빠른 공격에선 오히려 더 좋은 선수라고도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압박도 잘하죠. 조타가 압박에 굉장히 능한 선수인데 그 후임 역할을 완벽히 해주고 있습니다. 부족한 울브스 압박 전술을 체력으로 메꾸는 대단한 선수.
포덴세는 전에도 한 번 언급한 거 같은데 윙어 자리에 배치되도 안쪽으로 치고 들어오면서 슈팅을 하기보단 반대쪽 동료에게 빠르게 횡전환을 해주는 걸 선호했어요. 중앙 배치는 올 시즌 누누 최고의 선택이었습니다. 토트넘 전 두 번의 슈팅 찬스는 모두 약발인 왼발에 와서 아쉽게 맥없이 막혀버렸지만 네투와 함께 라울 부상 이후 울브스를 이끄는 선수죠.
아다마는 분명 전 시즌보다 폼이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수비를 몰고 가는 건 여전하죠. 개인적으로 도허티보다 온 더 볼이 훨씬 좋은 세메두가 라이트백으로 기용되고 있기에 아다마가 볼을 잡을 때 생기는 공간을 세메두가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패턴이 나왔으면 하네요. 2선 세 명 외에 공간이 나는 상황에서의 드리블은 세메두가 가장 좋다고 봐서…
아 그리고 아다마가 요즘 달라진 점이 있습니다. 터치라인 드리블 일변도이던 전의 모습에서 벗어나 안쪽으로도 많이 치고 들어오는 드리블을 선보였고, 순간적으로 왼쪽 측면까지 가는 플레이도 했죠. 이런 스위칭은 시즌 초반 나왔던 '스위칭을 위한 스위칭'이 아니라 정말 필요한 스위칭이라고 봅니다. 제가 줄곧 주장해왔던 '아다마를 터치라인에만 두는 건 너무 제한적'이라는 얘기가 좀 해결된 거 같아요.
그리고 네베스. 네베스의 커버가 되게 좋아졌습니다. 패스도 기회 나면 길 보고 찔러주는 게 좋았고요. 기동력이 가라앉아 버린 울브스 중원에 생기를 더해줬습니다. 반면 무티뉴는 에이징 커브 팍 왔다가 소튼, 아스날 전에 맹활약하면서 다시 살아나나 싶었는데 이번 경기는 좀 별로였습니다. 전반 15분까지 패스 미스만 세 개였어요. 좀 관리해주면서 지켜봐야 할 거 같네요. 지난 시즌에 너무 많이 뛰어서 과부하가 온 선수니까요.
마르살은 역시 수비적으로 안정적이고 좋았어요. 다만 네투한테 찔러주는 왼발 패스가 한 번도 안 나온 건 좀 아쉬웠습니다. 기회가 한 두 번 정도 있었는데요. 그래도 기본적으로 키핑, 수비, 킥이 되는 선수니 평타는 쳐줍니다. 돌아서면서 사타구니를 부여잡고 쓰러져서 누리와 교체됐는데 큰 부상이 아니었으면 하네요.
마치며
선제골을 내준다. 무리뉴의 팀에겐 절대로 해선 안될 실수입니다. 그러나 무리뉴의 토트넘은 1분만에 골을 넣은 후 내려앉기만 했고, 결국 89분 간 완벽하게 버티진 못했네요.
좋은 경기였습니다. 박싱데이라 이 글을 쓰고 나면 맨유 전이 곧이네요. 차근차근 올라가서 반환점을 돌 때는 8-9위 안에는 들어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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