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울 히메네스 이야기 - 멕시코 길거리에서 울브스의 주포까지 [디 애슬레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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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울 히메네스 이야기 - 멕시코 길거리에서 울브스의 주포까지 [디 애슬레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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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월 26일 기존 블로그에 포스팅했던 글을 겨온 것입니다.

여기엔 그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는 겸손하고, 우리와 가족이 되었죠. 모두가 그를 사랑합니다.

 

울버햄튼 사람들만 그를 사랑하는 건 아니다. 5,000 마일 정도 떨어진 테페히 델 리오  멕시코에 있는 축구에 미친 작은 구 광산촌 마을이다  에서도 라울은 애정을 받고 있다.

 

이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히달고 주의 테페히 지역 아마추어 축구리그의 회장 카를로스 나베즈이다.

 

히달고의 부활절 주간에는 아마추어 축구 대회가 중심이 된다. 여러 팀들이 큰 상금을 두고 겨룬다. 우승팀은 12만 멕시칸 페소,  5,500유로를 획득할 수 있다.

 

테페히는 부활절 주간에 경기를 열지 않지만, 팬데믹이 퍼지기 전 그들은 올해에 처음으로 녹아웃 버전 경기를 열어보려 했었다. 그 초안의 이름은 바로 El Torneo Raul Jimenez(라울 히메네스 토너먼트)였다.

 

우린 그를 기념하는 대회를 열고 싶었어요. 나베즈는 말했다. 그는 우리 지역 어린 선수들의 아주 훌륭한 롤모델이예요. 아이들은 라울을 우러러보면서 불가능은 없다고 생각하죠.

 

2020년 5월 기사입니다. 라울 히메네스는 현재 두개골 골절 부상을 입었고, 재활 중이라고 합니다. 라울의 빠른 쾌유를 빕니다. 다시 그의 플레이를 보고 싶네요.

만약 이 기사가 2년 전에 쓰였다면 지금의 글과는 아주 다른 분위기를 띄었을 것이다.

 

2018년 봄 26살의 라울은 멕시코 국가대표와 유럽의 대표 빅클럽에서 뛰는 그의 꿈을 실현했지만 그 맛만 잠깐 보고 다시 실패의 구렁텅이로 빠질 위기에 처해 있었다.

 

물론 그는 2017-18 시즌 벤피카에서 33번의 리그 경기를 뛰었지만, 그 중 27경기는 교체 출전이었다. 물론 그는 멕시코 대표팀 명단에 거의 항상 드는 선수였지만, 하비에르 에르난데스가 멕시코의 제일 가는 스트라이커였다.

 

이제 2020 5월이다. 지금의 라울은 유럽 전체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컴플리트 포워드 중 하나가 됐다. 팀 플레이의 주축으로 활약하는 이타적인 탑레벨 스트라이커는, 그와 동시에 아주 훌륭한 골 결정력을 자랑한다. 그런 선수는 그리 많지 않다.

 

라울은 2019-20 시즌 울브스에서 44경기를 출전해 22골을 득점했다. 리그에서 넣은 13골은 울브스의 승점 13점을 벌어다줬다  올 시즌 울브스에서 그보다 영양가 높은 득점을 기록한 선수는 없었다. 라울은 아다마 트라오레와 8골을 합작하면서, 프리미어리그에서 가장 위협적인 파트너십을 형성했다.

 

벨라의 인터뷰에서 라울이 프리미어리그를 즐긴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러나 기록들은 라울의 또다른 이야기를 말해주지 못한다. 테페히에서 온 자신의 근간을 절대로 잊지 않으면서 일반적인 축구 스타와는 다른 삶을 사는 겸손한 한 사람의 이야기 말이다. 디 애슬레틱이 라울의 고향을 방문했을 때, 라울의 골보다는 겸손함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들을 수 있었다. 라울을 잘 아는 사람들은 그의 겸손함과 지역과의 유대감을 강조한다.

 

테페히의 한 9살짜리 아이가 자전거를 타다가 중상을 입었을 때, 라울은 페이스타임을 통해 아이와 영상 통화를 나누면서 빠른 쾌유를 빌었다. 테페히 최고의 여자 축구팀이 히달고 주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을 땐, 라울은 팀에게 축하 영상 편지를 보냈다.

 

카를로스 벨라는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때 라울과 함께 멕시코 대표팀에서 뛰었다. 벨라는 본지와 인터뷰하면서 그의 투지와 정신력을 여러 번 언급했다.

 

라울은 그가 되고 싶은 것과 그걸 성취할 수 있는 방법에 아주 집착해요. 벨라는 말한다. 난 그런 열정이 오늘날의 그를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그는 엄청난 정신력을 지닌 사람입니다. 라울은 비난이나 세간의 나쁜 평가에 절대 쓰러지지 않아요. 그는 자신을 어떤 선수이고,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죠. 그게 성공의 공식이에요.”

 

그 비난과 나쁜 평가는 라울이 23살이었던 2014년 유럽으로 이적했을 때 많이 나왔었다. 울브스를 만나 늦게 핀 꽃은 그전까지 가끔 시들 뻔 하기도 했다. 2012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의 좋지 못한 성적은 멕시코의 경종을 울렸다. 라울은 6년 계약을 맺었으나, 그 이전에 라리가에서 큰 성공을 거뒀던 우고 산체스나 루이스 가르시아 같은 전 멕시코 국가대표 선수들과 맞먹는 활약을 할 거라는 비현실적인 기대엔 한참 미치지 못했다.

 

마드리드에서 라울의 폼은 급격히 떨어졌다. 그는 클럽 아메리카에서 1100만 파운드의 이적료로 팀을 옮긴 이후 27경기에 출전해 단 한 골 밖에 득점하지 못했다. 라울은 지난 2014년 아스와의 인터뷰에서 디에고 포를란, 디에고 코스타, 라다멜 팔카오의 빈 자리를 채우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에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1년 만에 벤피카로 이적한 뒤엔 팀과의 궁합이 훨씬 더 잘 맞았다. 9번 셔츠를 배정받고, 그는 45경기에 출전해 12골을 넣었다. 그 중에는 챔피언스리그 8강 바이에른 뮌헨 전에 아깝게 패했을 때의 득점도 있었다.

벤피카는 아틀레티코가 그를 영입한 값의 두 배를 치렀다. 라울은 2200만 유로로 벤피카에 합류하면서 당시 역대 멕시코 선수 최고 이적료 기록을 세웠다. 이후 세 시즌 동안 그는 리그에서 80경기를 뛰었으나,  20경기만이 선발 출전이었다. 그는 18 11어시스트를 올리며 팀에 나름 기여했지만, 언제나 브라질리안 골잡이 스트라이커 요나스보단 못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백업으로만 뛰었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도시인 웨스트 미들랜드의 울버햄튼 행은 라울의 커리어를 드높이기에 확실한 목적지는 아니었을 것이다  클럽은 6년 간 프리미어리그에 참가하지 못했었고, 유럽 대항전과는 37년 동안 연이 닿지 않았다. 그러나 누누 에스피리투 산투 감독은 라울이 승격팀 울브스의 핵심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아봤다.

 

많은 사람들이 잊었겠지만, 라울은 잉글랜드에 온 이후 초반에는 부진했다. 데뷔 초 10경기에서 단 두 골 밖에 넣지 못했다. 그때에도 그의 활동량과 부지런한 연계 플레이, 파이널 써드 안팎에서의 우아한 터치  올드 트래포드에서 주앙 무티뉴의 골과 셀허스트 파크에서 맷 도허티의 골을 도왔을 때 잘 드러났다  는 팀에 활력을 더해줬지만, 대다수의 팬들은 겨울에 다득점이 가능한 스트라이커가 새로 올 거라고 예상했다.

 

라울은 골문 앞에서의 킬러 본능은 부족한 선수로 보였다. 그가 오프사이드 트랩을 깨고 거의 완벽한 기회를 얻었던 허더스필드 홈 경기에서도 라울은 슛을 하는 대신 중앙으로 컷백을 내주는 걸 선택했다. 거기엔 아무도 없었고 볼은 하염없이 박스를 가로질러 굴러가기만 했다. 스탠드에선 팬들이 좌절감에 가득 차 울부짖었다.

 

2주 뒤의 포메이션 변경은 라울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울브스는 오랫동안 사용해왔던 3-4-3 시스템을 버리고 2018 12월 초 첼시 전부터 3-5-2를 가동했다. 라울은 그 경기 2-1 승리에 일조하는 골을 득점했고 디오고 조타와 함께 환상적인 콤비를 형성했다.

 

라울은 첼시 전을 포함해 이후 30경기에서 14골을 기록했다. 그는 지난 여름 멕시코 대표팀의 골드 컵에서도 그 폼을 이어나가 5골을 득점했고 대회의 선수상에도 이름을 올렸다  올 시즌엔 그런 시기가 더욱 길었다.

 

잉글랜드의 멕시칸 스트라이커로서 그의 성공은 예기치 못한 것이었다. 하비에르 치차리토 에르난데스는 2010년부터 2019년까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웨스트햄에서 리그 158경기를 출전해 53골을 넣었다. 라울은 대표팀에서 치차리토의 그늘에 가려져 있었고 그가 얼마 전 MLS로 이적하기 전까진 잉글랜드에서도 그랬지만, 라울은 이제 멕시코 최고의 스트라이커가 되었고 가장 가치 있는 해외파 선수로 자리잡았다.

 

벨라는 라울이 프리미어리그에서 크게 성공한 것이 놀라웠냐는 질문을 받자, 라울을 칭찬하기에 앞서 자기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는 정말 믿음직한 선수예요. 벨라는 말한다. 나는 세 시즌 동안 PL에 있었고 진정으로 축구를 즐기지 못했죠. 내 성격 자체가 그 리그에서는 편안해지지 못하더라고요. 그게 바로 내가 그를 믿은 이유입니다. 정말 피지컬적인 리그잖아요. 경기 일정은 빡빡하고요. 그런데 그는 자신의 플레이로 기량을 말해주죠. 같은 멕시칸으로서, 라울이 정말 자랑스러워요. 그와 함께 뛸 수 있다는 게 참 기쁩니다.

 

멕시코의 모든 사람들 역시 그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특히 테페히 사람들은 더욱.


라울이 여전히 테페히와의 유대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걸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이 도시의 축구 역사, 그리고 라울 가문과 테페히 아마추어리그 Liga de Futbol Independente Tepeji와의 인연을 먼저 알아볼 필요가 있다.

 

테페히의 번화가 중심부에 위치한 오래된 리그 본부 안에서, 카를로스 나베즈가 지난 100년 동안 축구와 사랑에 빠진 마을의 중요한 순간들을 자랑스레 이야기한다  라울의 프리미어리그 고공행진만큼이나 지역의 다음 세대 선수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리그의 사무실은 1983년에 지어졌다. 건물은 수수한 복층 구조에 최근 개축되었음에도 닳고 닳은 세월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길에서는 유리 케이스로 둘러싸인 거대한 과달루페의 성모 마리아의 자기 조각상을 볼 수 있다. 행인들은 지나가면서 조각상 앞에 서 성호를 긋곤 한다.

 

사무실 벽은 1940년대 중반 아주 큰 성공을 거뒀던 아마추어 팀들의 사진으로 장식돼 있다. 나베즈는 1층을 테페히의 훌륭한 축구선수들을 기념하고 리그의 흥망성쇠를 보여주는 박물관으로 개조할 생각이다.

 

나베즈의 말에 따르면, 한 세기 전 레알 델 몬테와 파추아의 지역 광산에서 일하기 위해 히달고로 건너온 잉글랜드 출신 엔지니어들이 테페히 바로 인근에 있었다고 한다. 이 지역의 첫 축구 경기는 섬유공장 노동자 팀과 잉글랜드 광부 팀으로 나뉘어 치러졌다. 섬유 노동자들을 고용했던 공장 Tollas la Josefina는 여전히 사업을 지속하고 있으며, 테페히 지역 경제의 등불 역할을 하고 있다. 이 기업은 동시에 1970년 현재의 포맷으로 경기를 치르기 시작한 테페히 축구 리그의 적극적 후원자이기도 하다.

 

우리의 축구는 아주 강력하죠. 나베즈는 말한다. 리그에는 총 90개의 팀과 다섯 개의 디비전이 있어요. 리그는 계속해서 확장되고 있죠. 현재 우린 2,300명의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으며 테페히의 축구는 이 동네 사람들에게 정말 많은 영감을 줍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경기가 있는 일요일을 기다려요.

 

최상위 리그는 La Primera Especial(역주-첫번째 스페셜이라는 뜻)이라고 불린다. 이 리그는 종종 일요일 오후에 3,000명 가까이 되는 군중들을 끌어당기는 빠르고 기술적인 축구를 보여준다고 말한다. 테페히 출신 선수들은 주 전역에 걸쳐 다른 리그에도 큰 돈을 받고 용병으로 활약하고 있다. 멕시코 시티나 다른 주변 시가에서는 테페히로 선수들이 유입된다.

 

선수들은 테페히에서 뛰길 원해요. 이 리그가 정말 매력적인 축구를 표방하니까요. 나베즈는 말한다. “테페히에서 나온 선수들은 프로페셔널한 축구선수의 특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들은 기술적이고, 빠르며, 두뇌 회전이 재빠르죠. 테페히에서 축구를 할 땐 많은 공간이 주어지지 않아요. 전직 프로 선수들도 여기에 오면 적응기를 거쳐야 하죠. 템포도 엄청나게 빨라요. 볼을 쥐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생각할 시간도 없죠. 그래서 테페히에서 뛰던 선수들이 둥지를 옮기면, 곧바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칩니다.

 

라울은 테페히의 유스 리그에서 뛴 적이 없지만, 그의 아버지 라울 히메네스 시니어는 1980년대에 테페히 리그에서 뛰었고 거친 태클을 시도하는 중앙 미드필더와 저돌적인 스트라이커로 이름을 날렸었다. 라울의 삼촌 몇 명도 테페히의 최상위 리그에서 뛰었었다. 그러나 이젠 아들의 에이전트로 잘 알려진 히메네스 시니어는 라울을 집 바로 건너편에 위치한 리가 맥스(Liga MX, 멕시코 축구리그)의 크루즈 아술에 소속된 아카데미로 데려갔다. 아버지의 직장 문제로 인해 멕시코 시티로 이사를 가게 되자, 라울은 클럽 아메리카의 유스 팀에 합류했다.

 

그러나, 어린 라울이 축구와 사랑에 빠지게 된 곳은 테페히였다. 라울이 골을 넣는 타고난 재주를 발견한 곳도 테페히였다. 그리고 단 한 번의 과격한 골 세레머니로 평생 남을 마크를 가져가게 된 곳도 테페히였다.

라울의 사촌 루이스 마누엘 플로레스는 울브스 스타 스트라이커의 유년 시절을 잠시 동안 회고했다.

 

나는 라울이 태어났을 때 테페히의 병원에 있었어요. 플로레스는 말한다. 그는 거기서 삶의 첫 6년을 지냈죠. 우리는 언제나 라울을 지지했어요  좋을 때든 나쁠 때든, 그의 커리어 내내요.”

 

축구를 하기 시작한 대부분의 아이들처럼, 라울은 골대에 슛을 날리는 걸 즐겼다. 플로레스가 기억하길 라울은 몇 시간 동안 축구를 하길 원했고, 골키퍼는 사절했다고 한다.

 

그는 어린아이였을 때부터 골을 넣는 재능을 지니고 있었어요. 플로레스는 말한다. 라울은 어렸을 때부터 축구를 사랑했죠. 그의 아버지 덕에 그는 항상 볼을 주위에 뒀고 축구는 언제나 그의 관심을 끌었어요. 라울이 어렸을 적에, 그의 아버지는 좋은 선수였으니까요.

 

라울과 그의 사촌들은 도시 중앙부에 위치한 작은 잔디밭에서 축구를 했다. 이제 잔디밭은 테페히의 메인 버스 정류장이 되었지만, 22년 전 그곳은 어린 라울의 삶에 중요한 사건이 발생했던 곳이었다. 골대 없이 축구를 하는 데에 익숙해진 후, 그들은 어느 날 공터에 갔을 때 누군가가 세 개의 시멘트 기둥으로 작은 골대를 만들어 둔 걸 보았다.

 

라울은 골을 넣고 셀레브레이션으로 크로스 바에 매달렸어요. 플로레스는 회상한다. 그리곤 모든 게 그의 위로 무너져 내렸죠. 시멘트 기둥이 그의 머리 위에 떨어진 거예요. 그는 피를 흘렸고 모두가 얼어붙었죠. 삼촌은 몹시 충격을 받은 듯한 표정을 지었어요. 당신들이 이미 알아봤을지도 모르겠지만, 라울은 그의 이마 오른쪽에 흉터를 갖고 있어요. 텔레비전에서 라울이 클로즈업되면 우린 그 상처를 보곤 그 날을 떠올리죠.

 

 

지금의 라울은 새로 창단된 퍼스트 디비전 팀 Los Lobos를 주시하고 있다.

 

그들은 울버햄튼 킷을 풀착장하고 경기를 뛰어요. 나베즈는 말한다. 라울의 사촌 몇 명도 그 팀에 소속돼 있죠. 라울은 매치데이가 되면 그들에게 동기부여를 위한 메시지와 영상 편지를 보내요. 난 그가 유니폼도 보냈을 거라고 생각해요.


중원으로 내려와 라인 사이에서 연계플레이를 펼치는 라울의 능력은 그가 누누의 울브스 시스템에서 가치를 매길 수 없을 정도로 귀중한 선수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해줬다. 라울은 공격을 개시하고 기회를 깔끔하게 마무리할 수 있는 플레이메이킹 센터포워드이다. 이러한 그의 특성은 멕시코 대표팀 감독 헤라르도 타타 마르티노에게도 이상적인 9번으로 다가왔다.

 

전 바르셀로나, 아르헨티나, 애틀랜타 유나이티드 감독은 지난 여름 리포터들에게 라울이 세계 최고의 멕시칸 스트라이커라고 말했다. 이 인터뷰는 라울이 남미 국가들을 상대로 한 세 번의 친선 경기에서 단 한 골 밖에 넣지 못하자 멕시코 언론들이 그를 비판하던 때에 나왔다. 마르티노는 당시 라울을 변호했고 지금까지도 그가 가져다주는 기록으로 평가할 수 없는 플레이를 소중히 여기고 있다.

 

나는 감독으로서 언제나 기술적인 중앙 스트라이커들과 일해왔어요. 마르티노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난 단 한 번도 골만 넣는 넘버 나인을 가져본 적이 없어요. 뉴웰스 올드보이스엔 나초 스코코가 있었고, 애틀랜타 유나이티드엔 요세프 마르티네즈가 있었죠. 지금은 라울이 있어요 그리고 아르헨티나와 바르셀로나 감독 시절 함께 했던 최고의 선수 역시 그렇죠.

 

 9번이 단지 골만 넣는 선수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의 시스템에서 넘버 나인은 아래로 내려와 10번의 역할도 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라울은 그 롤에 아주 적합한 선수죠. 그래서 우린 그의 기술을 잘 활용할 수 있었어요.

 

마르티노에겐 라울이라는 확실한 정점에 도달해 있으며 자신의 축구를 사랑하는 스트라이커가 있다.

 

당신의 스트라이커가 엄청난 폼을 보여주고 있고 자신감을 갖고 플레이한다면, 당신은 그들의 걸음걸이만으로도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거예요. 그는 정말 잘해주고 있어요. 라울은 지난 시즌에도 잘했죠. 그의 자신감이 그의 팀의 플레이 스타일과 감독의 지지의 산물임은 분명해요. 라울은 함께 공격을 주도하는 선수들과도 정말 좋은 호흡을 보여주죠. 아다마 트라오레와 디오고 조타 말이에요.”

 

울브스의 스태프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그들은 함께 일하는 것 자체가 영광스러운 정말 근사한 사내를 칭송할 것이다. 그의 성공에는 비밀이 없다  재능, 퀄리티, 그리고 성실함이 몰리뉴에서 라울의 위상을 드높였다. 지금의 라울과 2, 3년 전 라울 사이에 큰 차이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그가 지금은 매주마다 주전으로 선발 출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울브스는 이미 확실한 아이덴티티와 철학을 갖고 있는 팀 내에서 라울이 스스로 발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줬다. 그는 마지막 퍼즐이었다.

 

 

라울은 울브스에 합류한 이후 프리미어리그에서 선발 64경기, 교체 출전 3경기로 단 한 경기도 빠지지 않고 모든 경기를 뛰었다.

 

그러나 피치 위에서만 그가 없어서는 안될 존재인 건 아니다. 울브스는 라울 덕분에 지난 18개월 간 멕시칸 팔로워를 125배 늘렸다. 그들은 이제 영국보다 멕시코에 5배는 많은 소셜 미디어 팔로워를 두고 있다. 울브스의 써드 킷은 멕시코 그린이고, 멸종 위기에 처한 멕시칸 늑대를 위한 캠페인을 시작했으며, 멕시코계 미국인 프로 레슬러 신 카라를 경기에 초대하기도 했다.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이 터지기 전, 울브스는 올 여름에 텍사스로 전지훈련을 가 라울의 친정팀 클럽 아메리카와 프리시즌 친선 경기를 치르는 것도 계획해 뒀었다.

 

이는 울브스와 라울 모두에게 윈윈인 파트너십이 되고 있다. 클럽은 라울과의 관계를 최대한 유지해가길 원할 것이다. 하지만, 유럽에서 가장 큰 클럽들이 라울을 지켜보고 있기에 그가 몰리뉴를 떠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반면, 울브스의 많은 해외 영입생들 중에서 울버햄튼과 영국에서의 삶을 그 누구보다 잘 받아들였다고 전해지는 사람이 바로 라울이다.

 

거의 1년 동안 쉬지 않고 경기에 나선 뒤였던 2019 10 1주일 간의 휴식을 받았을 때, 라울은 두바이로 여행을 떠나는 전형적인 선수들의 길을 따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대신 바스, 스톤헨지, 솔즈버리 대성당을 구경했다.

 

그는 300만 명도 넘는 트위터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고, 그의 얼굴이 어느 날 영국의 Hello! 매거진이나 브리지스톤 타이어의 거대한 광고판 혹은 에너지 드링크 몬스터에 올라가 있을 수도 있다 (라울은 울브스 선수들 중 가장 많은 써드 파티 딜을 맺어 놓았다). 그러나 그는 그런 걸 좋아하지 않는 현실적인 스타다. 한 소식통은 라울이 은퇴한 뒤에도 매니지먼트나 미디어 관련 일을 할 것 같진 않다고 말하기도 했다.

 

라울은 팀의 훈련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울버햄튼 외곽의 집에서 거의 알아보는 사람 없이 지내는 걸 좋아한다. 라울이 쇼핑몰에 들르거나, 부인 다니엘라와 함께 개를 산책시킨다거나, 해리 포터 월드로 휴가를 떠나면 (그들의 강아지들 중 하나의 이들이 도비이다)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겠지만, 집에 돌아올 때만큼은 카메라 셔터 세례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라울은 울버햄튼에 완전히 정착했고 대체로 혼자만의 시간을 갖다가 클럽 내에서 가장 친한 친구인 조니 카스트로 오토와 같은 스페인어를 쓰는 동료들과 함께 섞여서 수다를 떤다. 축구와 가족은 그의 삶의 전부이고 울브스는 그 중심에 있다. 라울은 지칠 줄 모르는 가식 없는 메가스타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도 루머를 잠재울 수는 없었다. 플로레스는 코로나 19로 인해 축구가 중단되기 전 레알 마드리드의 스카우트가 라울을 주시하고 있었다는 보도를 확인해 줬다.

 

라울이 아스날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도 링크되고 있음에도,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이적이 이 스트라이커의 진정한 꿈이다. 플로레스는 그의 사촌이 레알 마드리드의 유명한 순백 유니폼을 입어보길 바라면서 자라왔다고 말한다. 라울은 2013년 코파 델 레이 엘 클라시코 하프타임에 응원 트윗을 작성하기도 했다.

 

레알 마드리드가 2-0으로 경기를 리드하자, 라울은 정말 대단해. 마드리드가 2-0으로 이기고 있어. 아직 경기가 끝나진 않았지만, 확실히 유리한 상황이야. #할라마드리드”라는 게시물을 올렸다.

 

그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 갔을 때, 많은 알레띠 팬들이 그 게시물을 꺼냈어요  라울이 레알 팬이었다는 걸 본 거죠. 플로레스는 말한다. 그는 시메오네의 플랜이나 팬들과 잘 맞지 않았어요. 난 그 모든 것들이 그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해요. 그는 언제나 마드리디스타였거든요. 라울의 꿈은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는 것이고 그들과 함께 승리하는 거예요.

 

라울은 이 달 초 ESPN과의 인터뷰에서 그의 미래에 관한 추측들을 언급했다. 그는 소셜 미디어만 보면 벌써 자신이 첼시, 아스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유니폼을 입게 된 거 같다는 농담을 했다.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관심에 대해 묻자, 라울은 그의 유년 시절 팬심은 제쳐뒀다.

 

만약 내일이라도 레알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의 오퍼가 온다면, 그건 절대 놓쳐서는 안될 기회가 왔다는 뜻이겠죠. 라울은 말했다.


테페히로 돌아가보자. 퇴근 시간이 다가오자 나베즈는 시내 중심가에 있는 지역 인쇄소에 들른다. 그는 테페히에서 자신의 리그와 축구를 지원해준 우고 산체스라는 이름의 (역주-앞에 잠깐 나왔지만 우고 산체스는 멕시코의 레전드 선수이다) 구단주에게 감사를 표한다. 산체스는 30대 중반이다. 그는 펑크록이 흘러나오자 유쾌한 분위기를 만들며 즐겼다. 두 사람은 다음 시즌 더 큰 잉글랜드 구단이 라울을 영입할지에 대해 담소를 나눴고, 나베즈는 리버풀을 이야기했다.

 

대화 주제는 빠르게 라울이 하비에르 에르난데스의 인상적인 프리미어리그 커리어를 뛰어넘을 수 있을지 없을지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나베즈와 산체스에게, 숫자나 기록은 전혀 상관이 없었다. 라울은 테페히에서 나고 자랐고 중요한 건 그것뿐이다.

 

“테페히에서는 에르난데스에게 밀접한 감정을 갖지 않아요. 나베즈는 말한다. 우린 정말 많은 걸 생각하죠. 그가 성공한 이유는 그의 아버지가 프로 선수 출신이었기 때문이에요. 그가 유럽에 간 건 그가 경제적인 의미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죠. 혹은 그저 좋은 에이전트를 둬서 그런 걸 수도 있고요. 축구는 가난한 사람이 아닌 부자에게 이득이 되는 스포츠예요. 특정 계층 사람들에게만 이익이 된다고요.

 

라울은 이 길바닥 출신이에요.”산체스는 웃음기를 띄면서 말했다.

 

나베즈가 말을 이어갔다. 우리는 테페히 출신이라는 게 정말 자랑스러워요. 그 무엇도 이 생각을 바꿀 수 없죠. 테페히를 위해서라면 이 한 몸도 바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린 우리의 축구를 사랑해요. 그러나 라울이 여기서 나고 자랐다는 사실과 그의 가족을 만나는 건 어린 선수들에게 큰 동기가 되죠. 아이들은 그런 걸 보면서 자기들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의 목표는 리그의 이름을 Liga de Futbol Independiente de Tepeji  Raul Jimenez로 바꾸는 거예요(역주-테페히 독립 축구 연맹이라는 뜻).

 

유명한 축구 캐스터 엔리케 베르무데즈는 언제나 라울이 테페히 델 리오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언급해요. ‘테페히의 늑대를 위한 종소리가 크게 울립니다!가 바로 그의 골 콜이죠.

 

테페히의 늑대 그에게 참 잘 어울리는 별명이다. 노랫말에 나오는 것처럼, 라울에게 볼을 주면, 그가 골을 넣을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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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링크: Tim Spiers 2020.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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