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브스 아스날전 리뷰: 승리는 칭찬하지만, 칭찬할 만한 승리는 아니다 [FA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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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브스 아스날전 리뷰: 승리는 칭찬하지만, 칭찬할 만한 승리는 아니다 [FA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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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합시다의 칼럼, FASTory입니다. 이름과는 달리 시간이 흘러도 가치 있는 글을 쓰겠습니다.

 

자, 무려 8경기만에 승리를 거뒀습니다. 기나긴 무승 행진에 드디어 끝을 냈고, 아스날이라는 상승세의 팀을 잡기도 했습니다. 근데 과연 이 경기를 이길 만했을까요? 울브스의 힘으로 승점 3점을 따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솔직히 어떤 스탠스로 글을 쓸지 고민이 많이 됐습니다. 비판하기엔 이겼는데, 칭찬할 수 있을 정도로 이기진 못했거든요.

 

어쩌면, 아니 거의 확실히 아스날이 이겼어야 했을 경기. 하지만 퇴장이 모든 걸 바꿔 놓은 경기. 그리고 ‘울브스의 무버지’ 무티뉴가 살아난 경기. PL 22라운드 울브스와 아스날의 경기가 어땠는지 함께 알아보시죠.

 

라인업

아스날은 예상대로 나왔습니다. 오바메양이 복귀했음에도 나오지 않았다 정도 말고는 딱히 짚고 넘어갈 게 없었네요.

 

울브스는 다시 4백을 들고 나왔습니다. 3백을 썼음에도 팰리스 전에서 실점을 내줬고, 전반엔 슈팅을 하나도 때리지 못한 게 주요한 이유였겠죠. 주제가 팰리스 전 이후 두 경기 연속으로 선발 출전했고, 레프트백에 마르살, 누리, 조니가 모두 부상으로 이탈해 원래는 3백 스토퍼를 자주 보는 킬먼이 나왔습니다.

 

전술과 선수들 이야기

경기 결과와는 매우 상반되는 이야기를 할 겁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긴 건 칭찬받을 만합니다. 그런데 칭찬받을 만한 경기를 하면서 이겼느냐? 아니, 적어도 비판받진 않을 만한 경기력을 보여주면서 이겼느냐? 절~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울브스의 4백과 3백 저울질, 그리고 딜레마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왜 그런지 한 번 이야기해볼게요.

 

견고한 수비? 조직력? 이젠 흔적조차 없다

보시다시피 경기 시작 후 27초밖에 안된 순간입니다.

이게 지금 뭐 하는 거죠? 사카가 크로스바를 맞추면서 운 좋게도 실점은 면했지만, 흔히 말하는 ‘실점과 다름없는’ 상황이 1분도 안돼서 나온 겁니다.

 

울브스가 3백을 쓸 때와 4백을 쓸 때는 라인의 높이 자체가 다릅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수비 방법도 바뀌어야 하는데, 선수들은 4백에 전혀 적응하지 못한 모습을 보였죠. 훈련이 안되는 건지 뭔지는 모르겠는데, 뒷공간이 거의 없던 시절을 생각하면서 높은 라인 수비를 하니 저렇게 다 털릴 수밖에 없어요.

 

전반 8분 상황입니다. 이 역시 VAR에서 라카제트의 오프사이드 판정이 나오면서 실점까지 가진 않았으나, 수비가 완전히 와해되면서 이런 기회를 상대한테 내준 것 자체가 문제죠. 제가 울브스는 왜 이기질 못할까? 라는 글에서 몇 문단을 소비해가면서 ‘얘네는 상대가 빠른 횡전환 혹은 종전환을 가져가면서 공격을 만들어가면 절대 못 막는다’라고 했었는데, 아직도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여기선 사카의 컷백이 그냥 흘러가면서 슈팅을 내주진 않았으나, 다시 한번 뒷공간을 노출합니다. 3백과 4백에서 가장 크게 차이를 보이는 선수는 바로 킬먼이었습니다. 사실 볼리나 코디는 계속해서 센터백을 맡았으니 롤 변화가 그리 크진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킬먼은 스토퍼가 아닌 풀백에 서면서 상대 측면 자원 (이 경기에선 사카였죠)을 바로 맞닥뜨려야 했고, 제대로 대응한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누리가 나와서 이렇게 털렸으면 ‘아, 누리는 공격 시에 그래도 전진이 제대로 되는 선수들 중 하나니까’라고 할 수 있겠지만 킬먼은 뭐가 없어요. 이 선수가 수비를 잘 못하면 딱히 해줄 말이 없습니다.

 

굳이 전환이 아니더라도, 이런 쏠림 현상은 계속해서 나왔습니다. 첫 장면에서는 세메두가 너무 달려나오면서 우측 뒷공간이 비었고, 그 공간을 코디가 커버해주러 갑니다. 그러면서 코디의 자리가 비니 네베스가 또 내려가주죠. 이거부터가 너무나도 잘못된 겁니다. 물론 커버를 모든 선수들이 잘해주면서 빈틈없이 막아주면 문제가 없지만, 두번째 장면에서 ESR이 볼을 키핑하는데 네베스에 코디까지 같이 붙어버리면서 페페한테 광활한 공간이 ‘박스 안에서’ 열리고 다시 한번 골대샷을 내줘요. 이런 자기 자리를 벗어나고 커버에 의존하는 수비도 3백이었으면 그나마 나았을 겁니다. 아마 세메두가 자리를 벗어났으니 코디가 붙어주고, ESR은 네베스한테 맡기는 건 같았겠지만 박스 안을 볼리와 킬먼이 책임지고 있었겠죠. 사카는 왼쪽 윙백한테 맡기면 되고요. 이런 것들 하나하나가 전부 울브스는 4백을 세울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걸 보여줍니다.

 

페페한테 내준 실점은 오히려 세메두가 실수를 세 번이나 하고 내려온 네베스도 알을 먹으면서 두 선수의 실책이 주요하게 작용했으니 팀적인 문제는 앞 네 장면보다 덜 하다고 할 수 있겠네요.

 

무승 기간에 3백을 쓴 4경기에선 1득점 4실점, 4백을 쓴 4경기에선 7득점 9실점을 기록했습니다. 승패기록은 비슷하게 안 좋았고요. 누누는 공수 밸런스가 적당히 맞는 전형을 아직도 짜지 못했습니다. 4백을 쓸 거면 조직력을 1부팀 수준으로는 끌어올려야 할 테고, 3백을 쓸 거면 공격력을 1부팀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4백을 쓰는 게 좀 더 나을 거라고 봤는데, 이런 수비력이면 딱히 4백도 좋다고 말하진 못하겠네요.

 

그럼 공격은 어땠을까?

무리뉴와 누누가 공격 전술 관련해서 듣는 비판은 거의 일치합니다. 1) 공격 시에 세부 전술이 없고 2) 선수들이 뭘 해야 하는지 모르며 3) 특정 선수들(무리뉴의 토트넘은 케인과 손흥민, 누누의 울브스는 라울이나 포덴세, 네투)에게 과부한 롤을 맡기고 4) 제대로 된 전진 루트가 짜여져 있지 않다. 이 경기도 그냥 그런 공격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냥 측면으로 몰리고 네투, 포덴세가 측면에서 드리블 치고 주제는 중앙에서 고립되고 아다마는 전에 비해서 많이 읽히고.

 

4백이 상대적으로 공격에서 나아보였던 건 그냥 공격수가 하나 더 있기 때문이에요. 누누에겐 공격을 잘 만들어갈 생각이 없습니다. 포덴세가 중원에서 볼을 받지도 못하고, 주제가 전방에 있으면 고립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사실 라울이었으면 포덴세와 주제의 역할을 동시에 했을 겁니다. 중원에서 볼 받고 전개하면서 팀을 전체적으로 전진시키는 것. 근데 포덴세한테는 피지컬이 없고 주제한테는 볼을 그만큼 앞으로 보내줄 능력이 없죠(‘앞으로’ 보내줄 능력이 없는 겁니다. 포덴세와 네투 때문에 상대가 몰려 있는 좌측에서 볼 잡고 반대 세메두한테 전환 패스 날려주는 건 라울의 향기가 났어요).

 

그래서 주제는 내려와서 볼을 받고 포덴세는 중원이 아닌 측면에 가서 볼을 잡은 뒤 드리블을 치고 크로스를 올리게 되는데, 이상하게 주제는 피지컬이 되게 좋은데도 크로스를 머리에 못 맞추더라고요. 스트라이커로서의 움직임은 꽤 괜찮았지만요. 아다마는 뭐 이젠 거의 다 읽혀버려서 경기 막판 제외하면 거의 못 뚫어냈죠(그럼에도 드리블 수치가 리그 최상위권이긴 합니다).

 

아스날이 수비를 잘 준비해오기도 했어요. 네투나 아다마가 볼 잡으면 풀백에 미드필더 하나를 같이 붙이면서 가둬놓는. 울브스는 측면을 중심으로 공격을 전개하면서도 계속 수비가 붙은 상태로 크로스를 올릴 수밖에 없었죠. 그러면 기대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습니다.

 

무티뉴

클래스는 살아있는 걸까요? 올 시즌 무티뉴가 좋았다고 할 수 있는 경기는 냉정하게 소튼 전과 아스날 1차전 밖에 없었습니다. 이 경기에서도 기동력은 떨어졌고 그에 따라 킬먼의 수비가 더 힘들어지긴 했지만, 무티뉴의 결승골은 가히 이달의 골에도 뽑힐 만한 원더골이었습니다. 그 외 패스나 다른 플레이들도 꽤 괜찮았고요.

 

지난 시즌 혹사의 여파로 완전히 에이징 커브가 온 거 같긴 한데, 그래도 간헐적으로 이런 번뜩이는 경기들이 나오는 걸 보면 클래스는 살아 있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https://www.instagram.com/p/CK4MZ10jSnE/

 

그리고, 판정

일단 베른트 레노의 핸드볼 파울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퇴장입니다. 박스 밖에서 손을 썼으니까요.

 

문제는 다비드 루이스의 퇴장입니다. 저도 솔직히 다이렉트 퇴장에 PK는 좀 과하고 옐로에 PK가 적당하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아스날 공식 홈페이지에 정심이었다는 게시물이 올라왔더라고요.

https://twitter.com/Arsenal/status/1357353363659227138

 

Arsenal on Twitter

“The Football Association have confirmed to us that the red card given to David Luiz on Tuesday against Wolves will stand.”

twitter.com

이 판정의 근거를 살펴보면, 1) 다비드 루이스는 윌리안 주제의 완벽한 득점 기회를 저지했으니 PK가 나왔고 2) 그 기회를 저지하는 과정에서 볼을 정당하게 노리는 게 아닌 볼에 관여할 수 없었으니 레드카드가 나왔다 라는 겁니다.

 

제 나름대로의 생각은 ‘오심은 아닌데 규정이 이상하다’입니다. 루이스는 주제의 뒤를 쫓아가고만 있었는데 퇴장당했으니 아스날 입장에서 억울한 것도 이해가 되고요.

 

마치며

디 애슬레틱에 팀 스피어스라는 기자가 있습니다. 울브스 담당 기자라 제가 많이 번역하는 기자죠. 그 사람이 많이 쓰는 말 중에 ‘sliding doors moment’라는 말이 있어요. 예전에 유로파 세비야 전 글에서는 ‘결정적 순간’이라고 의역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변곡점’ 정도가 될 수도 있을 거 같네요.

 

어제 올라온 아스날 전 리뷰에서도 저 sliding doors moment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이번 경기가 변곡점이 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누누가 결정하는 거라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여기서 딛고 올라설 수 있다면, 다비드 루이스의 PK와 퇴장 장면은 올 시즌 울브스의 변곡점으로 남겠죠. 그렇지 못한다면 그냥 운 좋게 이겼던 한 경기로 남을 거고요.

 

이제 시즌 반 이상이 지났습니다. 3백을 쓰든 4백을 쓰든, 어느 정도 비판은 받지 않을 만한 경기가 나오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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