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센에게 어둠이 드리워졌을 때 우리는 무기력했다. 오늘은 운이 좋은 날이었다 [디 애슬레틱]
클럽|국가 대항전/국가대표

에릭센에게 어둠이 드리워졌을 때 우리는 무기력했다. 오늘은 운이 좋은 날이었다 [디 애슬레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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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 2020에서 이보다 더 강력하고 가슴 아픈 사진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코펜하겐에 위치한 파르켄 스타디움에서 덴마크의 선수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서 있다. 그들의 쓰러진 동료, 크리스티안 에릭센을 위해 서로의 팔을 붙잡은 채 그를 둘러 싸고 있다.

 

몇몇은 너무 괴로워하며 뒤를 돌아보지 못했다. 다른 이들은 억지로라도 그를 지켜보았다. 그러나, 모든 선수들이 조용한 기도를 하고 있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우리도 그러하지 않았는가?

 

덴마크의 유로 2020 첫 경기였던 핀란드 전 전반 막판 에릭센이 살짝 뛰어가다가 그대로 넘어진 그 순간부터, 에릭센의 안위에 뭔가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의 근처 2미터 내에는 동료나 상대 선수가 아무도 없었지만, 많은 선수들이 그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달려오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리는 그의 몸짓만 보고도 뭔가 잘못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이제는 더 심각한 것들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에릭센의 생명이 좌우될 수도 있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고, 이 사태의 끝이 어떻게 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우리는 일제히 최선의 상황을 바라면서 최악의 상황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축구 경기에서 그렇게 갑작스레 모두의 사고를 멈춰버리는 상황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 12개월이나 미뤄진 이 토너먼트는 원래대로라면 우리의 삶이 정상적으로 돌아가면서 각양각색의 세레머니로 장식되었어야 한다. 그러나 이 끔찍한 몇 분 간 모든 것이 어둠에 갇혀버렸다. 비상 상황이 발생하면 안 되는 곳으로 구급 요원들이 달려왔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에릭센을 응원하는 것뿐이었다. 우리는 어리석지만 선의에 가득찬 의미로, 뭔가 조금이라도 상황이 좋은 쪽으로 흘러가길 바라면서 덴마크의 국기나 하트 이모지들을 트윗하며 그를 걱정했다. 우리는 소셜 미디어에 안타까움을 표현했고 새로운 소식이 나오길 바라는 갈증에 온 인터넷을 뒤졌다. 우리는 단지 목격자일 뿐이었지만, 너무나도 무기력했다.

 

생중계를 봐도 기분은 하나도 나아지지 않았다. 이 끔찍한 상황을 보고 괴로워하는 홈 팬들은 침묵을 유지하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카메라에 비춰지는 사람들은 그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경기가 이제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심폐 소생술이 이뤄졌고 어느샌가 구급대원들이 의식을 잃은 에릭센을 가려주기 위해 장막을 쳤다. 덴마크의 선수들도 이에 동참해 쓰러진 동료를 둘러쌌다.

 

완전히 굳어버린 토마스 델라이니, 안드레아스 크리스텐센, 요나스 빈트의 표정은 그들의 두려움을 잘 보여줬다. 세 선수는 울고 있었다. 특히 델라이니는 극심한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가장 먼저 달려가 쓰러진 에릭센의 회복을 도왔던 캡틴 시몬 카예르는 응급처치가 바로 발 앞에서 벌어지는 것을 보면서도 힘들어 하는 동료들을 격려해야 했다.

 

관중석에서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의 팬들이 구호를 연호하기 시작했다. 핀란드 팬들이 크리스티안을 외치면, 덴마크 팬들은 에릭센을 외치며 그를 응원했다.

 

처음으로 긍정적인 뉴스가 나오고 나서야 우리는 조금씩 안도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UEFA의 공식 계정에서 코펜하겐에서 가장 큰 병원 Rigshospitalet에 이송된 에릭센이 일단 안정을 되찾았다는 소식을 전했다. 덴마크 축구협회는 그가 의식을 찾았다는 것을 알려줬고 팬들은 희망을 되찾았다. 어둠이 걷히는 순간이었다.

에릭센이 쓰러진 후 덴마크와 핀란드의 경기는 약 한 시간 반 동안 중단됐지만, 여러 소식들이 나오면서 경기 재개가 긍정적으로 검토됐다. 에릭센은 그의 조국을 응원했고, 병원 침상에서 팀 동료들과 대화를 나누며 확신을 주었다.

 

덴마크의 1-0 패배는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심지어 메이저 국제 대회 데뷔전을 치른 핀란드도 그들의 역사적인 승리는 에릭센의 건강보다 중요치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경기 중단 이후 돌아온 상대에게 박수갈채를 보냈다.

 

에릭센을 위해 기도하는 핀란드의 선수들. 그들은 덴마크 선수단이 경기장에 다시 들어오자 박수를 보냈다.

 

덴마크의 카스퍼 휼만트 감독은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보였다. 정말 힘든 경기였어요. 오늘 저녁 우리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됐습니다. 뜻깊은 유대관계, 우리와 가까이 있는 사람들, 그리고 가족과 친구들 말이에요. 휼만트는 말했다. 그는 대표팀에 경기를 중단한 뒤 다음 날에 재개하는 선택지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희망적인 것은 코펜하겐의 축구가 비극을 피했다는 것이다. 2003년 컨페더레이션스 컵 4강 카메룬에서 뛰던 마크-비비앙 푀의 사망 같은 재앙이 반복될 수도 있다는 염려도 많았다. 당시 푀는 심장질환으로 인해 쓰러진 후 목숨을 잃었다.

 

볼튼 원더러스의 미드필더였던 파브리스 무암바도 2012FA 컵 토트넘 원정에서 비슷하게 운명을 달리할 뻔했다. 무암바의 심장은 78분 동안 멈춰 있었지만 그는 살아났다.

 

앞으로 며칠, 몇 주 동안 에릭센의 건강 상태에 이목이 쏠리겠지만 빠르게 대처했던 그의 동료들과 잉글랜드 심판 앤서니 테일러, 그리고 메디컬 팀은 큰 찬사를 받아야 한다. 그들의 공로는 차마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대단했다.

 

최악의 재앙은 피했지만, 슬픔이 모두 가신 건 아니다.

 

이날은 에릭센의 훌륭했던 커리어에서 가장 소중한 밤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덴마크가 이 정도로 중요한 경기를 주최한 적은 한 번도 없었으며, 에릭센 같은 선수도 드물었다. 그는 덴마크 축구계의 상징 중 하나였다.

 

그리고 에릭센이 그 자리에 올라서기까지 그를 도왔던 이들도 있다. 그는 덴마크 대표팀 선수일 뿐만 아니라, 프리미어리그에서 7년 동안 토트넘에서 주전으로 뛰기도 했다. 에릭센은 2019년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오른 팀의 창의성을 책임졌고, 토트넘의 역사에서 영원히 떼어놓을 수 없는 전설로 남을 것이다. 토트넘에 합류하기 전 그는 아약스에 있었고, 그곳에서 에레디비시 타이틀을 세 번이나 들었다.

 

가장 최근에 에릭센은 인터 밀란에서 이탈리아의 챔피언이 되었고 팀과의 인연은 아직도 몇 년이 남아 있다. 앞으로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러나 확실한 건 에릭센은 이미 환상적인 커리어를 보냈다는 것이다. 그는 아직도 20대이며 벌써 클럽과 대표팀을 통틀어 600경기 이상을 뛰었다. 대부분의 선수들에게 이런 숫자는 꿈에서나 봤을 테고, 최고의 레벨에 오른 이들이나 그와 자웅을 겨룰 수 있을 것이다.

 

덴마크, 네덜란드, 잉글랜드, 그리고 이탈리아의 축구팬들은 중원을 지배하고 기교를 부리며 정확한 패스를 뿌려줬던 에릭센이 안정을 찾았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을 포함한 많은 팬들은 그가 완전히 회복했다는 말이 나온다면 더욱 운이 좋다고 느낄 것이다. 가끔은, 축구가 별로 중요하지 않을 때도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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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링크: Philip Buckingham 2021.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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