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을 마치고 돌아왔더니 결국 누누가 토트넘의 지휘봉을 잡게 됐군요.
한지 플릭, 율리안 나겔스만, 랄프 랑닉,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파올로 폰세카, 젠나로 가투소 등 수많은 감독을 거쳤던 토트넘의 감독 사가는 누누가 부임하면서 마침내 종착역에 다다랐죠.
사령탑이 없어 다음 시즌의 계획을 도무지 알 수 없었던 토트넘의 혼란스러웠던 상황도 정리됐습니다. 그러나 토트넘 팬들의 반응은 그리 좋지 않아요. 오히려 불만을 드러내는 팬들이 훨씬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울브스 팬으로서 이런 반응은 반가울 수밖에 없습니다. 누누 아웃! 울브스 팬들이 이 달의 감독 누누에게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 ②단점 — FASTory 같은 음해성 글까지 써가면서 누누가 좋은 감독이 아닌 이유를 설파한 보람이 있네요.
서론은 이만 줄이고, 왜 누누가 좋은 감독이 아닌지, 왜 누누는 안 되는지 알아보도록 합시다.
참고할 만한 글: 누누 사임: 사실상 1월에 경질, 전술에 의문을 가진 선수들, 그러나 떠나는 이에겐 박수를 [디 애슬레틱]
공격
누누의 공격 전술은 대체 무엇일까요? 누누의 공격이란 마치 로또와도 같은 것입니다. 무작위성에 기대면서 어쩌다가 한 골씩 뽑아내는 것이 바로 누누의 공격이죠. 그의 로또에서 확률 조작을 담당했던 건 뛰어난 개인 기량을 지닌 라울 히메네스, 아다마 트라오레, 페드로 네투, 다니엘 포덴세였습니다.
누누의 공격이 얼마나 별로인지를 몸소 보여주는 한 선수가 있죠. 바로 디오고 조타입니다. 2019-20 시즌 그렇게 골골대면서 기회란 기회는 다 날려먹던 조타는 2020-21 시즌 리버풀에서 환골탈태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조타는 울브스에서 잘하는 다른 공격 자원들과는 살짝 다른 유형이었어요. 아다마, 라울, 포덴세, 네투 같은 선수들은 볼을 가지고 혼자서 전진할 수 있습니다. 아다마야 뭐 설명 안해도 중앙 측면 가리지 않고 두 세 명 정도는 전진 드리블로 뚫어줄 수 있고, 네투 역시 마찬가지죠. 라울도 앞의 둘 만큼은 아니어도 하나 정도 제치거나 전방에서 볼을 받고 동료에게 좋은 패스를 내줄 수 있습니다. 반면 조타는 낮은 위치부터 올라가는 전진 드리블에 장점이 있는 선수가 아니에요. 볼을 지켜주는 선수도 아니고, 전진 패스가 그리 좋지도 않습니다. 빠른 속도를 활용해서 전방으로 침투해 마무리까지 가져가는 플레이를 많이 하는 편이죠. 라울은 롤 없이 자유롭게 플레이해야 잘하는 유형의 선수라면 (AT 마드리드, 벤피카에서는 잘 못하다가 누누의 울브스로 넘어와서는 쭉 잘하고 있습니다. 내려와서 볼 받아주는 것부터 공격 시에 전반적으로 영향력을 끼치는 스트라이커의 전형을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누누가 오히려 롤을 구체적으로 안 주니 많이 돌아다니면서 공격을 살리는 데에 딱 맞습니다) 조타는 반대로 보다 역할 조정이 필요한 선수라고 할 수 있겠죠.
조타라는 선수의 플레이 스타일이 이런 거니 전진 드리블을 못하는 게 엄청나게 심각한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누누의 팀에서는 이게 문제가 되죠. 누누는 중앙을 활용한 빌드업을 거의 할 줄 모릅니다. 측면을 쓴다고 해도 뭐 수적 우위를 통해 상대를 뚫어내거나 하는 세부 전술이 없어요. 창의성을 불어넣어줄 수 있는 공격형 미드필더도 잘 쓰지 않는 편이고요. 그래서 공격진이 볼 전진부터 마무리까지 모든 걸 다 해야 하는 상황이 연출됩니다.
때문에 공격수들의 이동 거리가 상당히 길어지고 (라울의 히트맵도 아주 장난 아니었습니다. 기본 수비 위치가 낮다 보니 아래로 많이 내려와야 하는데 또 거기서부터 최전방까지 뛰어가야 하니) 조타도 자신에게 맞지 않는 롤을 부여받으면서 19-20 시즌에는 최악의 활약을 했습니다. 울브스는 리버풀과 달리 공격 시에 공격 숫자를 늘리고 공간 분배나 상대의 시선을 끌어주는 선수들이 없었죠. 윙백들까지 공격적으로 올라와서 상대 진영에 숫자는 많아 보여도 그냥 측면에 윙, 윙백 두 명씩 세우고 미드필더 하나 올라와봤자 중앙이나 하프스페이스에는 2~3명이 전부이니 뭐가 될 리가 없죠.
지난 시즌 조타가 나가고 난 뒤에는 아다마와 네투가 양측면에서 계속 드리블만 치면서 크로스 올리고 하는 플레이가 지속됐습니다. 근데 박스 안에 있는 게 11월에 부상을 당한 라울이 아니라 파비우 실바로 변했으니 골이 들어갈 수가 없죠. 라울은 연계부터 득점까지 다 할 수 있었겠지만 접근법을 바꿀 생각을 안 하고 실바한테 똑같은 걸 그대로 시키면 대체 어떡하나요.
이런 생각은 시즌 말까지 계속돼서 결국 실바는 등딱을 어느 정도 익혔습니다. 시즌 초에 치기만 해도 픽픽 쓰러지던 선수인데 라울이라는 틀에 끼워 맞추려고 기어코 포스트업을 시키더군요. 누누가 생각하는 공격은 그냥 전방에서 스트라이커가 버텨주고 윙들은 드리블 치고 하면서 다 자기들끼리 만들어내야 합니다. 그런 과정에서 어떤 공간을 활용하거나, 선수들의 움직임을 정해주거나, 패턴 플레이를 만들거나 하는 건 없어요. 이걸 확신했던 건 지난 시즌 초 웨스트햄 전에 상대가 내려앉아 있으니까 선수들이 정적으로 변하고 뭘 하질 못합니다. 압권은 아다마가 중앙에서 볼 잡고 라울이 측면에서 침투하는 장면이었죠.
윙이 크랙처럼 드리블을 시도한다고 해서 동료들이 가서 도와주도록 하지는 않고 그냥 나머지 선수들은 구경하는 것처럼 멈춰 있습니다. 자연스레 드리블러는 고립되겠죠. 아다마가 협력 수비를 시즌 내내 당했음에도 고쳐지질 않았습니다(물론 여기에는 아다마가 동료 활용을 지지리도 못하는, 축구 지능이 너무 낮은 선수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그나마 4백을 쓰면서 공격 숫자 자체를 좀 늘리면 상술한 문제들이 아주 조금은 해결되긴 했지만, 수비가 무너져버렸죠. 시스템 상으로는 공격을 풀어내지 못하는 겁니다. 4백을 가동하면 주로 4231을 썼는데, 공격진과 미드필더진은 전진했음에도 보수적인 수비라인은 계속 유지했기에 중원에 공간이 벌어지고 상대에게 역습을 내주거나 볼이 잘 돌아가지 않는 등의 문제도 노출했습니다.
이 사람은 선수의 특성을 고려하거나 윙의 개인플레이 외에 확실하게 전진할 수 있는 방법을 만들 생각이 없어요. 상대가 공격하다가 끊기고 윙 자원들의 속도를 활용해서 빠르게 전진해 마무리하는 역습 말고는 확실하게 뭘 처리할 줄 모릅니다. 심지어 역습 공격도 선수들이 만들어내야 해요. 라울한테 주고 달리든, 그냥 윙어가 드리블 치고 나가든. 근데 케인하고 손흥민 있는 토트넘 보면 상대팀들이 내려앉을 텐데 어떻게 하려는지 도통 모르겠습니다.
아마 케인과 손흥민은 어느 정도 잘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 둘 외에 어떤 선수에게서 그 좋아하는 알아서 만드는 플레이를 뽑아낼지 모르겠네요. 오히려 케인과 손흥민은 자기들끼리 뛰면서 전보다 공격이 좋아 보이는 효과를 낼 수도 있습니다. 근데 그때 속으시면 안 돼요. 감독이 잘 짜줘서 잘 되는 게 아니라 개인 능력으로만 만들어내는 거니까. 조타가 안 될 때 울브스처럼, 무리뉴 말년처럼 제한된 기회에서 마무리를 짓지 못하면 안 되는 축구를 하는 거니까.
수비
울브스 실점 기록 보고 ‘음 누누가 그래도 수비는 나쁘지 않은가 보군’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절대로 속으면 안 됩니다. 누누는 심각하게 수비적인 축구를 하는 거지 수비를 잘 짜는 게 아니에요.
울브스 수비 분석: Eric Laurie — FASTory 이 글이 시즌 초에 나온 거라서 최종 결과와는 좀 차이가 있겠지만 대충 본격적으로 3백 축구를 구사하는 누누는 이런 식의 전술을 들고 나온다고 보시면 됩니다. PL PPDA 꼴찌, 파이널 써드에서의 압박 20위. 저 때는 진짜 수비적으로 나왔던 첼시 전이나 맨유 전도 하기 전이었는데 저런 수치가 나왔으면 말 다했죠 뭐.
누누가 시대에 역행하는 감독인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겁니다. 압박을 전혀 하지 않으며 지나치게 수비적인 축구만 한다는 것. 90분 내내 맞고만 있다가 비기면 다행이고 지기도 하는 전술을 씁니다. 상대팀 감독이 본인이라면 비기거나 운 좋게 이길 수도 있겠죠. 근데 대부분의 감독들은 누누보다는 공격 전술을 잘 짭니다. 전반기 첼시 전을 이기기는 했습니다만, xG는 거의 1점을 뒤진, 행운이 크게 따르는 승리였죠. 그 외에 진짜 수비적으로 나온 맨유 전, 맨시티 전 다 박살이 났고요.
누누의 압박 전술은 어떤지 알아보려 해도 알아볼 수가 없습니다. 없거든요 압박 전술이라는 게. 보통 상대가 수비형 미드필더나 풀백에게 패스를 내주면 압박을 들어가는 식으로 볼을 뺏으려 해야 하는데, 누누볼에는 그런 게 없습니다. 누누에게 전방 압박이란? 네투나 조타 같이 체력 쌩쌩한 애들 한둘이 볼 쫓아다니는 것. 그런 거 외에는 없습니다.
이런 식으로 내려앉아서 수비를 하면 어느 팀이든 실점을 줄일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안 하는 이유는 승리를 따낼 수 있는 최선의 방식이 아니기 때문이겠죠. 스승인 무리뉴와 비슷한 스타일이긴 한데, 더 수비적이고 전술은 더 안 좋습니다.
이렇게 수비적인 3백을 쓰다가 하도 성적이 나오질 않으니 4백을 썼습니다. 그러나 4백에서도 결국 득점력은 개선이 됐지만 앞서 말했듯이 중원에서의 간격을 조절하지 못하고, 완전히 내려앉아 있던 3백과는 달리 약간 높은 위치에 라인을 형성하니 선수들이 적응하지 못해 오프사이드 라인이나 조직력도 엉망이었기에 3백으로 회귀했죠.
4백에서의 수비는 더욱 끔찍했는데, 역습은 더 많이 맞으면서 수비 숫자는 하나 줄었고 발이 느린 선수들을 계속 기용하면서 뒷공간까지 노출하니 말 그대로 첩첩산중이었습니다.
지난 시즌 울브스가 수비에서 취약점을 노출했던 상황 두 가지를 꼽자면 하나는 상대가 빠르게 방향을 전환하는 상황, 다른 하나는 세트피스였습니다. 세트피스는 후반기 브라이튼 전이나 번리 전에 보여줬던 것처럼 공중볼에서 상대의 주포가 되는 장신 선수들을 제대로 마크하지 못하고 오히려 6야드 박스 앞에 키 큰 선수들을 세워두면서 당하는 장면들이 많았죠.
진짜 문제는 상대의 전환 상황입니다. 일단 양 풀백 또는 윙백을 맡았던 세메두와 누리의 수비력이 그리 좋지 않았기에 측면을 털리는 경우가 잦았고, 이후에 크로스나 컷백이 올라오면 박스 안에서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하는지 전혀 설정이 안 돼 있었어요. 웨스트햄, 번리, 브라이튼, 맨시티, 아스날, 크리스탈 팰리스, 사우스햄튼, 토트넘, WBA, 맨유 전에서 이런 실점을 내줬습니다. 거의 모든 구단에게 측면에서 중앙으로 넘어오는 상황에서 위험한 찬스를 제공했죠. 심지어 최하위로 강등된 셰필드에게도 전후반기 두 경기에서 모두 컷백에서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그중 개막전이었던 전반기에는 골대를 맞추는 슈팅으로 아주 운 좋게 위기를 모면했고요.
누누는 선수들이 수비 진영으로 빠르게 복귀할 때 어떻게 조직적인 대형을 다시 갖추는지 알려주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내려앉아 있는 상황이 아닌 조금 혼란스러운 때에 울브스의 수비를 보면 한 선수한테 3명이 몰려 있거나 (물론 그 선수는 아다마가 아닙니다) 모든 선수들이 문전까지 내려와 박스 앞 공간이 비거나 하는 장면들이 너무나도 많았습니다. 특히 후자의 상황은 컷백이 올라올 때마다 드러난 문제였음에도 시즌이 끝날 때까지 고쳐지지 않았죠. 그래서 그냥 누누는 이런 공격을 막을 생각이 없구나 하고 생각했네요.
또다른 이유는 2부에서 이어서 설명하겠습니다. 2부에서는 ‘잘못된 선수 기용과 선수단 운영’에 관해 다룰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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