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부자연스럽지만, 토마스 투헬은 그 도입부에 있었다. 첼시의 신임 감독은 RB 라이프치히가 유망주 선수들에게 보여주는 12분짜리 영상 ‘Playing Philosopy’ (역주-의역하면 ‘전술 철학’ 정도가 되는데, 이 클럽의 철학에 대해서 선수들이 인지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 비디오 같은 것인 듯 하다)에 가장 먼저 얼굴을 비추는 사람이다. 랄프 하센휘틀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클럽의 첫 분데스리가 시즌을 이끌었던 2016-17 시즌에 만들어진 그 영상은 매우 높은 수준으로 발전한 라이프치히의 전술에 대한 자랑스러움을 담는 동시에, 외부 검증도 원하는 신인들의 마음을 충족해준다.
아마 그건 당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 있던 투헬이 라이프치히의 전술을 ‘그들이 완벽하게 행하려 하는 성실함과 콤팩트한 수비, 빠른 트랜지션으로 대표되는 축구’라고 칭찬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투헬은 선지적인 예상을 했다. “라이프치히가 현재의 플레이를 구현하기 위해 들인 헌신과 그 시스템이 얼마나 잘 돌아가는지를 직접 본다면, 여러분도 그들의 성공이 플루크로 끝나진 않을 거라는 걸 알 수 있을 겁니다.”
그 영상 속에서 라이프치히의 철학을 말하는 또다른 분데스리가의 감독은 바로 당시 호펜하임에 있었던 율리안 나겔스만이었다. 그는 현재 레드불 아레나의 감독직을 맡고 있다. 나겔스만은 2017년 1월 색소니에서 2-1로 패배한 이후 “수적 우위를 통해 볼을 따내고 공격적으로 수비하는 라이프치히의 자세는 우리보다 훨씬 나아요.”라고 말했다. “유럽 최고의 팀들이 전형적으로 그런 수비를 하죠.”
이 비디오가 보여주듯이, ‘수비’는 라이프치히의 심장과도 같다. 하지만 그건 단순한 수비가 아니다. 독일에서 40년 간 이를 고안하고 수비 원칙들을 끊임없이 갈고 닦아 결국 정점에 도달한 62세의 랄프 랑닉은 팀 전체가 볼을 향해 벌떼같이 움직이면서 공격적으로 수비하는 ‘활동적이고 볼을 목표로 하는 압박’을 설파한다.
그 영상은 전체적인 팀의 구상 정도 밖에 나타내지 않지만, 짜임새 있는 압박을 만들어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이 들어갔는지를 잘 보여준다. 각각의 선수들이 상대 진영에서 자신만의 뚜렷한 롤을 부여받는 것이다. 라이프치히의 압박에는 상대의 움직임을 유도하는 ‘압박 트리거’가 있었다. 양쪽 각에서 들어와서 상대의 볼을 따내는 ‘2차 압박’과 ‘프레싱 부스터’ 역시 존재했다.
볼을 따냈을 때에도 그와 비슷하게 팀적인 움직임이 나온다. 최소한 한 선수가 즉각적으로 상대 뒷공간으로 직선적인 침투를 가져간다. 랑닉의 제자 라스 코네트카(현재는 PSV의 수석코치이다)의 코칭 핸드북에 나오는 말을 빌리자면, ‘공간과 시간을 동시에 취하는’ 것이다. 이 아이디어는 상대가 라인을 정비하지 못하도록 10초 내에 골대 근처까지 볼을 가져간다는 데에서 나왔다.
2021년 지금엔 이 모든 생각들이 실제로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에서 축구계의 선지자가 된 랑닉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던 사람들은 다른 대부분의 감독들보다 이런 전략들을 더 가차없이, 성공적으로 잘 활용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더 큰 무언가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 수십년 동안 쌓여 온 통찰력과 인맥으로 채워진 깊은 지식의 도움을 받은 것이다.
오늘날 독일 최상위권 클럽들 중 랑닉의 광활한 네트워크의 영향을 받지 않은 클럽은 거의 없다. 볼프스부르크 (올리버 글라스너), 보루시아 묀헨글라드바흐 (마르코 로제),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아디 휘터) 는 모두 챔피언스리그 티켓을 놓고 경쟁 중이나 랑닉의 전 클럽 라이프치히보다 뒤쳐져 있으며, 레드불 잘츠부르크에서 축구를 배웠던 감독들을 두고 있다.
한지 플릭의 전술 재조정을 통한 트레블의 숨은 공신으로 활약한 바이에른 뮌헨의 수석 코치 대니 롤은 라이프치히 유스 팀의 비디오 분석가로 업계에 발을 들였으며 이후엔 분데스리가와 사우스햄튼에서 하센휘틀을 보좌하기도 했다. 투헬이나 로저 슈미트(PSV) 같이 또다른 랄프 랑닉 축구 사단의 졸업생들도 그의 품을 떠나 해외에서도 성공을 거뒀다. 분데스리가에서 전술적으로 첨단에 서있는 축구가 나오는 데에 그보다 더 많은 영향력을 끼친 사람은 없다.
이 글은 랑닉의 아이디어 왕국이 어떻게 세워졌고, 또 운영되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랑닉은 3부리그의 SSV 울름에서 선수 생활을 했으나 프로 레벨까지 올라서진 못했다. 작은 동네의 클럽 빅토리아 바크낭에서 플레잉 코치를 하던 랑닉은 1983년 트레이닝 캠프에서 발레리 로바노프스키의 디나모 키예프를 만났고, ‘축구적인 깨달음’을 얻었다. 로바노프스키의 압박은 랑닉이 이전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모든 범위를 지배하는 통일적인 압박이었다.
그와 마음이 맞았던 멘토이자 축구 전술을 독학한 건축 기술자 헬무트 그로스와 함께 랑닉은 로바노프스키와 이후 등장한 AC 밀란의 아리고 사키의 전술들을 차용하기 시작했다. 볼을 기반으로 한 지역 수비 – 물론, 스위퍼는 없다 – 와 적극적인 압박은 당시 정통파와는 상반됐지만 VfB 슈투트가르트는 이런 혁신에 열려 있었다.
랑닉과 그로스는 유스팀에 부임해 새로운 플레이 스타일을 향한 길을 다져나갔고, 그들은 마침내 ‘슈투트가르트 스쿨’로 이름을 널리 알렸다.
슈투트가르트 스쿨의 수많은 졸업생들 중 하나가 바로 어린 투헬이었다. 그는 랑닉이 3부리그의 울름을 2.분데스리가로 끌어올렸던 시절 울름에서 뛰었다. “그는 내게 볼을 기반으로 한 전술을 가르쳤어요. 랑닉은 제가 철학을 만들어가는 데에 아주 중요한 영향을 끼쳤죠.” 투헬은 그때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부상이 그의 커리어를 단축시켰다. 몇 년이 지나고, 랑닉은 슈투트가르트에 감독으로 복귀했고, 투헬에게 아마추어 레벨에서 재기할 기회를 줬으나 이는 수포로 돌아갔다. 이후 투헬은 슈투트가르트 유스 코치를 맡게 되었다.
투헬은 8년 뒤 34살의 나이로 마인츠의 감독에 선임되면서 자신의 성공을 보였다. “내가 슈투트가르트 풋볼 스쿨의 충실한 졸업생 대표라고 할 수 있을 거예요.” 투헬은 슈투트가르터 자이퉁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부모님의 가정교육에 따라 성격이 달라지는 것처럼, 축구계에선 어렸을 적 감독에 따라 좌우되는 겁니다. 이 점에 있어서 난 공격적인 마음가짐, 전방에서의 수비(압박)과 볼을 기반으로 한 플레이로 대표되는 슈투트가르트 스쿨에 내 한 몸을 바쳤어요. 당연히 나도 이후 발전을 거듭했죠. 그러나 나의 토대는 슈투트가르트에 있습니다.”
랑닉의 방식은 그의 다음 클럽이 된 하노버와 샬케에서도 계속해서 몇몇 선수들과 관계자들에게 영감을 줬지만, 그는 백만장자 디트마어 호프가 후원하는 시골 구단 호펜하임에서 보다 오래 가는 클럽의 기조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2006년부터 2011년까지 랑닉은 독일 축구 사상 최초로 연속 승격에 성공한 클럽 호펜하임을 이끌었고, 그곳에선 유스와 디벨롭먼트 팀, 전술, 이적시장 정책까지 모든 것들이 하나의 목표를 위해 능률적으로 이뤄졌다.
랑닉이 그의 엄청나게 강도 높은 전술을 구현하기 위해 어리고 빠른 선수들을 원했기에, 클럽은 23세 이상 선수들을 영입하라고 따지지 않았다. 클럽은 새로운 사람들을 채용할 때 랑닉과 잘 맞는 사람들을 뽑았고, 코치들은 그와 그로스의 시선으로 축구를 보기 위해 계속해서 지도받았다. 짧지만 성공적인 샬케 2기를 보내면서 랑닉은 그의 마법을 다시 한번 선보였으나, 그 강력함은 더욱 세졌다.
에너지 음료 회사 레드불은 RB 잘츠부르크와 RB 라이프치히를 통해 유럽 축구에 발을 들이면서 랑닉을 스포츠 디렉터로 선임했고 2012년부터 2020년까지는 글로벌 단장을 역임시켰다. 뿐만 아니라 그는 두 차례 감독을 맡기도 했다.
랑닉은 “Uberzeugungstater”, 즉 독일어로 자신의 경기 방식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신념을 가진 사람들을 찾고 있었다. “독일에선 감독이 철학을 갖고 움직이면 그 감독은 플랜 A 밖에 없다고 말하곤 하죠.” 그로스는 독일 축구에 정통한 작가이자 저널리스트 조나단 할딩에게 말했다. “그런 사람은 플랜 B가 없다는 거예요. 랑닉과 나는 전술적인 철학을 발전시켰고 – 어쨌든 우린 이렇게 생각해요 – 플랜 A부터 Z까지 갖고 있습니다. 그건 경기 내에서 우리가 답을 낼 수 없는 문제는 나올 수 없다는 걸 뜻합니다. 각각의 해결책은 서로 크게 다르지만, 우리가 어딘가에 빈틈을 남겨둔 건 아니에요. 우린 이런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너무나도 긴 시간 동안 일해왔습니다.”
랑닉의 생각은 이 말로 설명된다 – 만약 RB의 코치들이 이런 철학에 신뢰를 갖지 않는다면, 선수들도 마찬가지일 거라는 것이다. 끝까지 갈 준비를 하지 않으면 오래가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잘츠부르크에 랑닉이 선임한 한 젊은 코치는 그의 팀이 곧바로 느린 점유율 축구를 하도록 했다. 그는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시스템이 짜여진 곳에서 그런 전술을 계속 실험하는 건 의미가 없을 거라는 말을 들었다. 기존 코치들의 집약적인 전술적 재교육을 받고, 그 코치는 완전히 자신의 방식을 뒤엎었다. 그는 현재 일류 클럽의 감독을 맡고 있다.
레드불의 업무 체계에는 주기적인 피드백과 평가 과정이 있었지만, 그보다 중요했던 건 – 라이프치히, 잘츠부르크, 잘츠부르크의 제휴구단 FC 리퍼링과 브라질과 미국의 위성구단들로 대표되는 – 레드불이 확고하게 정해진 커리어 로드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우린 모든 코치들의 커리어에서 적당한 때에 적당한 역할을 줬어요.” 랑닉은 말했다. 전술 천재들은 전형적으로 유스 레벨부터 시작해 수석코치와 감독 코스를 차레로 밟는다.
“랑닉은 정말 까다로워요. 때론 과할 정도로요.” 전 RB 라이프치히의 CEO이자 현재는 바이에른 뮌헨의 아카데미 디렉터를 맡고 있는 요헨 사우어는 본지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러나 그건 당신을 한계까지 몰아붙이면서, 그 다음 단계로 올라갈 수 있도록 하는 거죠. 그보다 중요한 건, 랄프는 자신의 지식을 나누는 데에 정말 이타적이라는 겁니다. 다른 이들은 그들의 비밀을 긴밀하게 지킬지 몰라도, 그는 자신을 선생님이라 생각하고 주변인들에게 알려주죠. 듣는 사람들은 랄프를 도울 순 없어도 배울 수는 있어요.”
볼프스부르크의 감독 글라스너 역시 비슷한 말을 했다. “랄프는 24시간 내내 뭔갈 바꾸길 사랑하는 사람이예요.” 그는 rbilve.de에서 밝혔다.
“난 모든 것들을 개선하고 발전시키면서 디테일에 집중하는 그의 방식을 좋아해요. 랄프는 정말, 정말 까다롭지만, 그건 성격 때문이 아닙니다. 그는 항상 프로젝트가 앞으로 나아가길 원하죠. 7-0으로 이겼던 경기가 기억나네요. 랄프는 그 경기를 보고도 완전히 기뻐하지 않았어요. 우리가 4, 5골은 더 넣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 거죠.”
랑닉은 엘링 홀란드(전 잘츠부르크), 조슈아 키미히(전 라이프치히), 다요 우파메카노(잘츠부르크에서 라이프치히로 이적) 같은 현재 최고의 반열에 올라선 선수들을 가장 먼저 찾아내고 키워내는 선봉에 서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 문화를 영속시키기 위해 새로운 코치 인재를 찾아 지도하는 데에도 큰 힘을 쏟고 있다.
‘머니볼’이 영리한 장사의 약칭으로 등장하기 오래 전부터, 랑닉은 선수들과 팀을 발전시키는 코치를 선임하는 게 가치를 높이는 가장 빠르고 지속 가능한 방식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결과적으로, 랑닉의 클럽들은 특이한 감독 채용 방식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예를 들어 수비수였던 보 스벤손은 150만 유로에 마인츠의 U-19 유스 코치로 영입됐고, 이후 2019년 랑닉의 선택을 받아 리퍼링의 감독까지 역임했다.
몇 주 전, 마인츠는 스벤손을 원래 그에게 줬던 금액에 좀 더 얹어서 그를 감독으로 다시 데려왔다. RB 그룹의 감독 중심적인 모델의 또다른 예시는 2018-19 시즌에 나왔다. 후계자로 낙점됐던 나겔스만이 하센휘틀의 빈 자리를 바로 채울 수 없었기에, 랑닉은 별로 믿음직스럽지 못한 사람을 그 자리에 앉히는 대신 스스로 퍼스트팀을 맡아 1년 간 클럽을 이끌었다.
“중요한 건 랄프가 감독의 시선으로 생각하면서 아주 확실하고 생산적인 방식으로 감독을 도울 수 있다는 거예요.” 그와 오랫동안 일해온 관계자가 말했다. “대다수의 클럽들은 축구를 이해하는 걸 시작하지도 않은 구단주, 스포츠 디렉터, 혹은 CEO를 보유하고 있죠. 그들이 감독이나 스태프의 퀄리티를 평가하는 건 훨씬 더 어려워요. 그래서 실수가 더 많이 나오는 거고요.”
현재 독일인 코치들을 원하는 수요가 매우 많다는 사실은 위르겐 클롭이 리버풀에서 잘하고 있다는 것과 – 랑닉의 컨베이어 벨트가 강력한 대인관계와 탁월한 전술적 노하우를 지닌 젊고 야심찬 코칭 인재들을 계속해서 배출하고 있는 것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비록 랑닉은 현재 그 어떤 클럽에도 관여하지 않고 있지만, 그가 남긴 시스템과 그의 제자들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머지 않은 미래에, 독일의 상위 6개 팀이 모두 랑닉에게 배운 경험이 있는 사람을 감독으로 선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랑닉이 감독이나 스포츠 디렉터 같은 또다른 요직을 맡으면서 돌아올까? 독일은 아마 얼마 뒤에 새로운 대표팀 감독을 필요로 할 것이다. 첼시는 랑닉을 시즌 끝까지 임시 감독으로 선임하길 바랐지만, 그가 거절했다. 랑닉은 잠깐동안 팀을 다지고 나가는 사람이 아니다. 그와 가까운 소식통들은 흥미로운 프로젝트들이 거론되고 있다는 힌트를 줬다. 랑닉과 그의 황금과도 같은 연락처가 어디로 갈지 지켜보는 건 굉장히 재미있을 것이다. 확실한 건 단 하나다. 그는 분명 이번 여정을 함께 할 사람을 한 두 명 정도 알고 있을 거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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