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애슬레틱 글들을 번역하면서 느낀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얘네들이 ‘fluid한 축구’에 관해 굉장히 자주 이야기하고 만치니의 이탈리아나 펩 혹은 투헬의 팀 등을 묘사할 때 잘 쓴다는 거였어요. 그런데 이 fluid football의 정확한 뜻과 용어를 저부터 잘 몰라서 번역이 명확하게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마 전 글에는 대체로 ‘유연한 전술’, ‘유동성 있는 전술’, ‘유동적인 축구’ 등의 표현을 썼던 걸로 기억해요. 그러던 와중 마침 티포 풋볼에 이 ‘fluid football’이란 개념을 설명한 영상이 올라와서 번역해봤습니다. 재밌게 봐주세요! – 역주
축구에서 fluidity란, 선수들이 전술적인 시스템 아래에서 갖는 ‘움직임의 자유도’를 설명하는 또다른 용어이다.
몇몇 감독들은 선수들이 각자의 포지션에 머무를 줄 알아야 하는 딱딱하고 조직적인 축구를 선호하지만, 유동적이고(fluid) 물 흐르는 듯한 공격을 만들어가기 위해 선수들이 서로 위치를 바꾸는 전술을 좋아하는 감독들도 있다.
이런 유동적인 움직임은 팀의 플레이를 예측하기 어렵게 만들고, 따라서 이론상으로는, 상대로 하여금 수비하기 더욱 힘들게 한다. 선수들의 로테이션 혹은 선수들의 포지션 스와핑이라고도 하는 행위는 상대 수비의 혼란을 야기하며 수비수를 원래 자리에서 끌어내 선수가 자유롭게 볼을 받을 공간을 만들면서 볼을 후방에서 전방으로 전진시킬 수 있도록 한다.
로테이션이라는 개념은 양 측면의 윙어가 서로 자리를 바꾸거나 스트라이커가 인사이드 포워드와 자리를 바꾸는 것과는 약간의 차이를 갖는다. 선수들은 유동적인 패스 무브에 따라 그들의 포지션을 수차례 바꾼다.
예를 들어, 위 장면에서 다이아몬드의 맨 밑 부분을 맡고 있는 풀백이 순간적으로 왼쪽 측면 공간에 오버래핑을 올라가면, 중앙쪽의 미드필더가 내려와 밑 부분을 채우고 반대쪽의 윙어는 안쪽으로 들어감으로써 대형을 유지하고 언제나 다수의 패스 선택지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식이다.
코칭 단계에서 이런 형태의 움직임은 훈련 세션에 적용되기도 한다. 3v3이나 5v5 같은 풋살형 게임은 이런 움직임에 초점을 맞추는 드릴의 일종으로, 이 단계에서 선수들 간의 움직임을 훈련한 뒤 연습 경기에 돌입하게 된다.
이를 실제 경기에서도 구현하려면 선수들의 전술적 이해도와 동료들 사이의 케미스트리가 좋아야 하고,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볼을 주고 받을 수 있는 탄탄한 기본기와 좋은 오프 더 볼 움직임도 수반되어야 한다. 한 팀으로서 훈련과 경기에서 이런 연계 플레이를 충분히 수행하면, 이런 움직임은 선수들의 몸에 밴다. 선수들은 동료가 포지션을 벗어나는 상황에 알맞은 대처를 할 뿐만 아니라, 그 후의 플레이를 예측하고 흐름을 이어나갈 수 있는 움직임을 미리 생각해둘 수 있게 된다.
이런 시스템이 가동되면 선수들은 제 자리를 벗어나도 어느 정도의 활약을 하기 위해 원래와 다른 포지션에서도 뛸 줄 아는 다재다능함을 갖춰야 한다. 센터백이 측면으로 이동하거나 타깃맨이 중원에서 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맨체스터 시티가 때때로 선발 명단에 비슷한 유형의 선수들을 여럿 집어넣는 이유이기도 하다. 펩 과르디올라의 들어간 더블 펄스 나인 전술을 보면 케빈 데 브라이너, 베르나르두 실바, 일카이 귄도안, 리야드 마레즈, 필 포덴이 마치 컴퓨터 프로그램처럼 역할을 바꾸며 상대 진영을 오간다. 그러나 과르디올라는 표면적으로 보이는 것보다는 안정적인 시스템을 선호하는 감독이다. 시티의 아름다운 스위칭 축구는 선수들이 프리롤을 부여받아 경기장 전역을 돌아다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선수들은 준비 과정에서 감독의 지시를 받아 이미 반복 훈련을 통해 유동적인 움직임을 갈고 닦았다. 선수들이 진짜 자유로운 롤을 부여받는 곳은 파이널 써드 뿐이지만, 그 안에서도 팀은 조직력을 유지한다. 말하자면 과르디올라의 시티는 유동적이지만 동시에 조직적이기도 한 것이다.
반면 션 다이치의 번리 같은 팀에는 시티가 보유한 탑 레벨의 선수들이 없다. 따라서 그들은 수비적이고 견고한 시스템 하에서 장신 스트라이커에게 롱볼을 보내고 측면의 윙어에게 볼을 내준 뒤 다시 박스 안으로 크로스를 올리는 축구를 한다. 번리의 선수들에겐 그런 축구가 맞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전략은 꾸준히 성공을 거두고 있다.
유동적인 시스템을 가동하는 팀이 높은 지역에서 턴오버를 저지르면 원래의 조직적인 수비 대형을 갖추지 못한 채로 위험한 역습 기회를 내줄 수 있다. 때문에 유동적인 전술을 쓰는 팀들 중 대다수는 볼을 뺏기면 곧바로 여러 선수가 역압박을 들어가 볼을 다시 가져오는 수비 전술을 채택한다.
번리 같은 딱딱한 전술을 가진 팀들도 훈련에서는 꾸준히 유동적인 움직임을 연습할 것이다. 단지 그들은 볼 소유권을 내주고 경기를 하기 때문에 이런 움직임을 보여줄 기회가 많지 않은 것 뿐이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우리가 생각하는 단단한 조직력을 자랑하는 또다른 예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공격을 나갈 때면 전방에 위치한 선수들의 움직임과 스위칭을 통해 기회를 창출한다.
모든 팀들이 이런 움직임을 만들어낼 수 있다. 가장 수비적이고 엄격한 대형을 갖추는 전술을 쓰는 팀도 수비를 혼란스럽게 하기 위해 빠른 패스 플레이 중 선수들이 포지션을 바꿀 수 있도록 한다. 공격하는 팀이 유동적인 축구를 잘 구사한다면 아주 매력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감독과 팀들이 보여줬듯이, 유동적인 축구가 언제나 성공을 담보하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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