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 30일 기존 블로그에 포스팅했던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들어가기에 앞서, 라울 히메네스 선수의 쾌유를 빕니다.
라울은 경기시작 후 4분 경, 코너킥 경합 과정에서 아스날의 다비드 루이스와 머리를 부딪힌 뒤 쓰러져 피치 내에서 의식을 찾지 못하다 9분 간 장내에서 응급처치를 받고 결국 병원으로 이송됐습니다.
다행히 의식을 되찾았고 사람을 알아보거나 대화를 할 수 있는 정도까지 회복, 정밀 검진을 받는다고 하네요.
+추가 소식에 따르면 두개골 골절이었다고 합니다… 수술은 잘 마쳤다고 하니 선수의 빠른 쾌유를 기원합니다.
라울 히메네스, 머리에 큰 충격 입고 즉시 병원으로 이송(업데이트) [디 애슬레틱] (tistory.com)
얼마 만에 이런 경기를 보는 걸까요? 지난 시즌 토트넘 원정 역전승이 8개월 전이고, 맨시티 더블은 이제 1년이 다 되어갑니다.
누가 이런 경기를 상상했을까요. 4백 훈련을 한다는 기사는 봤지만 실제로 쓸 줄은 몰랐습니다. 내가 아는 누누는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었으니까요. 코디가 복귀하고, 무조건 3백으로 회귀한다는 게 제 예측이었습니다.
지난 1년 간 단 한 번도 누누를 옹호해본 적이 없지만, 오늘 경기에서만큼은 명장 인정해야겠네요. 1979-80 시즌 이후 리그 첫 10경기에서 최다 승점을 달성한 경기. 팀 창단 이후 첫 에미레이츠 스타디움 승리.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알아봅시다.
라인업
라인업을 보시면 코디가 4백에 있다는 게 상당히 놀랍죠. 3백 리베로 역할 외에 다른 자리에 서는 걸 본 적이 없는 거 같은데 수비적인 단점을 생각하면 4백에 절대 못 세울 만한 선수였으니까요.
경기 시작 전까지도 포메이션은 어찌 나올지 예상이 안됐습니다. 이 라인업으로는 최대 네 가지 정도의 예측이 나올 수 있었는데, 1)네투, 포덴세, 아다마 중 하나가 라울과 함께 투톱을 서고 442 형태를 만든다 2)네투가 셰필드 전이나 맨시티 전처럼 내려와서 433을 만든다 3)포덴세가 공미롤을 맡아서 4231을 형성한다 4)마르살을 3백의 스토퍼로 쓰고 네투를 윙백으로 쓰든 한다. 사실 4번은 선수 구성 본 뒤엔 거의 안 나올 거라고 봤고, 결과적으로 경기에선 3번이 사용됐죠.
전술과 선수들 이야기
이런 식으로 4231을 하면서 울브스가 가져올 수 있었던 이점은 포덴세, 네투, 아다마, 파비우 실바 (원래는 라울이었겠지만…)까지 네 명의 선수가 공격에 적극 가담하다 보니 공격 숫자를 상대에 밀리지 않게 가져갈 수 있었다는 점과 수비할 때 중원에 공간을 내주지 않았다는 점이죠.
원래 울브스는 네투, 라울, 아다마, 포덴세 중 3인을 전방에 세워서 수비, 볼 배급, 마무리까지 다 시키는 스타일이었는데, 공격수를 하나라도 더 늘리면서 각 선수들에게 지워지는 짐을 좀 덜어줄 수 있었겠죠. 전방에 선택지가 많다 보니 역습이나 공격 전개도 빠르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고요.
포덴세, 네투, 아다마가 중앙과 측면에서 열심히 수비 가담해주면서 아스날의 전방 볼 투입을 막는 것도 좋았습니다. 지난 소튼 전에서는 코디가 빠지고 갑작스레 4백을 돌리는 거라 선수들이 너무 달려들면서 수비하는 감이 없잖아 있었는데, 이번에는 연습을 꽤 하고 왔는지 조직적으로 수비라인 잘 짜더라고요. 확실히 누누는 수비 전술을 잘 짜는 감독이 맞습니다. 울브스에 처음 부임하고 프리시즌 동안 3백 전술 연습만 6주 동안 했다는 썰이 있는데, 그만큼 조직력을 중요시하는 감독이고 조직적인 수비를 잘 만들어내요.
공격을 전개할 때엔 최대한 상대를 끌어당긴 후에 앞으로 나가는 게 인상깊었습니다. 그냥 계속 코디-파트리시우-볼리 횡패스 느리게 돌리면서 상대가 마지못해 압박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면서, 공간을 만들어내는 거죠. 그 후에 중원의 무티뉴나 포덴세한테 찔러주든, 뒷공간 가는 네투를 보든, 아다마한테 넘겨주고 돌파를 시키든 하면서 공격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면 전방에 선수들이 많으니 슈팅까지 만들어낼 수 있었죠.
네투가 좌측에서 꾸준히 베예린의 뒷공간을 파고들면서 기회를 만든 것도 이 전략의 영향이 있다고 봅니다. 네투는 스피드와 온더볼이 다 좋으니 1대1을 빠르게 벗겨내고 동료에게 볼을 전달해줄 수 있었죠. 그리고 첫 골 장면에서 네투가 골대에 맞고 나온 볼을 따내서 득점했는데, 소튼 전에서도 라울의 골대 맞는 슈팅 이후 세컨볼을 따내 골을 기록했습니다. 위치 선정에 대한 감각이 있는 것 같네요. 슈팅도 포덴세 득점 장면에서 나왔지만 충분히 잘해주는 선수라 앞으로의 활약이 더 기대됩니다.
포덴세를 가운데에 기용한 것도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포덴세가 잘해줬던 플레이가 마치 인버티드 윙어-지원처럼 측면에서 치고 들어오다가 반대쪽 동료한테 그대로 볼 넘겨주는 거였는데, 중앙에서도 그 플레이를 잘 해줬죠. 덕분에 아다마와 네투한테 볼이 잘 투입될 수 있었고 역습 시에도 중원에서 빠르게 볼 전진이 가능했습니다. 두번째 골 장면에서 보여준 세컨볼 상황 집중력은 덤이죠.
포덴세가 중원으로 오면서 무티뉴, 네베스, 덴동커가 돌아가면서 아래쪽에 두 미드필더 자리를 채울 거라고 예상되는데, 이렇게 되면 무티뉴에게 어느 정도 휴식 시간도 줄 수 있고 선수들 체력 안배 면에서도 좋은 기용이라고 봐요.
아다마는 재계약 안 해줘서 클럽이 선발로 못 뛰게 하는 거라는 얘기도 있었는데, 역시 잘하는 플레이를 유감없이 보여줬습니다. 개인적으로 아다마는 터치라인 드리블 원툴이 아니고 치고 들어오면서 슈팅하는 옵션도 열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래도 가장 잘하는 건 측면 드리블이었네요. 꼭 선발로 기용해야 하는 선수예요. 상대 공격진이 받는 부담의 차원이 다릅니다. 아다마가 드리블 치면 그 뒤에 둘 씩 붙여두는 수비도 나오죠. 아다마의 존재가 또 좋은 이유는 크로스를 올리면 상대 수비라인이 무너지면서 볼을 걷어낼 수밖에 없고, 울브스가 세컨볼을 잘 따낸다는 겁니다. 라울이 아웃되고 난 뒤에는 거의 땅볼 크로스를 보내던데, 의도한 거였다면 꽤 영리한 플레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울브스는 사실 네베스 무티뉴라는 좋은 중원 자원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측면을 중심으로 공격하는 팀입니다. 그런 면에서 측면에 있는 네투나 아다마 같은 선수들에게 꾸준히 볼을 쥐어주고 1대1을 시키는 게 중요한데, 오늘은 그런 대치 상황이 자주 나왔죠.
파비우 실바도 정말 준수하게 해줬습니다. 제가 전에 뒤에 누가 오는지도 모른다고 깠었는데, 오늘은 진짜 꽤 좋았어요. 연계도 깔끔하게 이어주면서 헤더도 어느 정도 따주는 모습. 특히 위치 선정은 정말 대형 공격수의 싹이 보였습니다. 아직은 피지컬이 모자라서 2% 부족한 모습이었지만, 볼이 흐르는 곳에 가 있는 장면이 몇 번 나왔어요. 차라리 라울은 완전히 회복할 때까지 푹 쉬고, 앞으로 실바가 잘 못하더라도 기회를 꾸준히 준 다음 여름 이적시장에서 좋은 공격수를 사오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무티뉴는 오늘도 클래스 보여줬습니다. 평소보다 훨씬 더 열심히 뛰는 느낌이었어요. 지난 소튼 전에서도 그렇고, 이번 경기에서도 무티뉴가 중원에서 볼을 끊어낸 뒤 빠르게 속공으로 전환되는 장면이 종종 나왔습니다. 지난 시즌의 혹사와 나이로 인해 에이징 커브는 확실하게 온 거 같아서 많은 걸 기대하진 않지만, 체력 안배해주면 충분히 리그 수위급 미드필더의 활약을 펼칠 수 있다는 걸 보여줬습니다.
덴동커는 역시 박스 침투가 잘 맞아요. 센터백도 가능한 수비형 미드필더가 박스 침투를 주무기로 삼는다니 뭔가 이상하지만, 진짜 수비보다 공격가담이 낫습니다. 울브스는 공격 시에 전방에서 잦은 스위칭을 가져가고 그래서 박스 내 숫자가 부족한 경우가 나올 수 있는데, 그럴 때 성큼성큼 올라와서 헤더 따주는 게 바로 덴동커였죠. 네투의 선제골 상황에서 헤더로 골대를 맞추면서 세컨볼을 만들고, 코너킥 상황에서도 헤더로 유효슈팅을 해냈습니다. 공격 시의 세밀함이나 패스 같은 건 부족하지만, 활동량과 공격 가담으로 팀에 더해주는 게 많다고 생각해요. 물론 헤나투 산체스 영입 가능하면 무조건 해야 하지만...
수비도 상당히 좋았는데, 특히 코디가 예상외로 수비를 되게 잘하더라고요. 오늘 코디의 롱볼은 많이 안 나왔지만, 클리어링을 10개나 기록했습니다. 크로스 시에 위치를 잘 잡고 앞쪽에서 끊어내더라고요. 아스날이 왜 크로스 위주로 공격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식으로는 절대 울브스 못 뚫습니다. 코디, 볼리에 4백이 다 박스 안에 위치하고 미드필더들도 박스 바로 앞에 서는데 그런 공략으론 안되죠. 차라리 좌우전환을 빠르게 가져가면서 수비 간격을 넓혀 놓거나, 울브스가 너무 내려앉아 있을 때 중거리를 때리고 혹은 완전히 웅크리고 있다가 코디만 남아있을 때 역습을 노리는 게 훨씬 낫습니다. 아르테타의 선택이 많이 아쉽죠.
볼리, 마르살도 수비 좋았어요. 마르살도 3백에서 스토퍼가 가능한 만큼 이번 경기처럼 박스 내에서 수비할 때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겠죠. 굳이 아쉬운 선수를 꼽자면 패스 미스를 좀 했던 세메두가 입에 오르겠지만, 전반적으로 모두 잘해줬다고 봅니다. 파트리시우도 실수가 한 번 있었지만 여전히 안정적이었고요.
교체로 나온 네베스와 킬먼도 좋았습니다. 네베스는 정확한 패스를 한 두 번 보여줬고, 킬먼도 상대 움직임을 미리 예측하면서 살짝 나가서 막는 수비가 좋았죠.
마치며
전 사실 경기를 보기 전부터 리뷰를 어떻게 쓸지 생각해두고 있었습니다. 4백을 쓰면 소튼 전 좀 불안한 수비의 기억 때문에 1대0으로 질 거라고 생각하고 [불안한 4백, 그러나 과도기는 필요하다] 정도를 생각하고 있었고, 3백을 쓰면 또 무승부 나오겠다고 보면서 [돌아온 3백, 변함없는 답답함] 으로 제목을 지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공격 숫자를 적절히 늘리면서 수비 시에 조직적으로 대형을 갖추는 훈련도 꽤 하고 나니 정말 좋더라고요. 이제 정말 4백으로 가야 할 때입니다. 지난 경기들, 얼마나 답답했습니까? ‘빽빽한 미드필드’ ‘풍부한 공격수들’ ‘단단한 수비’ 4백이 필요합니다. 이번 경기에서만큼은, 그 레스터의 명장 브랜든 로저스 부럽지 않은 누누 에스피리투 산투였습니다.
라울이 그렇게 갑작스럽게 피치를 떠나고 선수들도 많이 당황했을텐데 멘탈 잘 잡고 열심히 뛰는 모습이 정말 좋았습니다. 세컨볼 상황에서 집중력을 잃지 않고 결국 두 골을 만들어냈죠. 이 승리를 라울에게 바치며 글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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