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함의 집합체 [FASTORY] 울브스 vs 노리치
Wolves

답답함의 집합체 [FASTORY] 울브스 vs 노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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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봐주기 힘든 경기였습니다. 수준 이하의 뭔가들이 모여서 안타까움을 절로 자아내는 경기력이었네요.

 

웨스트햄 전과 달라진 건 딱 하나입니다. 라울의 골을 어시스트했던 다니엘 포덴세가 코로나 양성으로 명단에서 제외되면서 그 자리에 프란시스코 트린캉이 들어왔네요. 이거 하나 바뀌었습니다. 선수 구성만 보면요.

 

근데 이것이 경기 전체에 엄청나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트린캉이 이 경기에서 보여준 좋은 모습은 한 손에 꼽을 수 있습니다. 물론 한 손가락으로요. 후반 시작 직후 우측에서 안쪽으로 들어오면서 침투하는 라울에게 로빙 패스를 보내줘서 골대 근처 찬스를 만들어낸 것. 그거 말고는 너무나도 안 좋은 경기력만을 보여줬습니다.

 

어째 공식 홈페이지 갤러리에도 볼을 뺏기는 장면이 올라와 있습니다.

 

세메두가 오랜만에 지능적인 플레이로 볼을 빨리 내줘도 상대에게 뺏기고, 역습 타이밍에 볼을 잡으면 수비에 막히거나 한번 뚫으면 또 턴하거나 돌아서면서 템포 늦추고, 주력도 느리고, 패스도 별로고, 솔직히 말해서 눈 씻고 찾아봐도 장점을 말하기가 힘듭니다. 그나마 후방에서 볼 받고 돌아서는 움직임? 돌아서는 움직임은 꽤 괜찮은 편입니다. 근데 부드러운 터닝 이후 드러운 패스나 드리블을 하니 뒤에서는 전진 패스를 넣어줬는데 볼은 오히려 후진을 해버리는 신기한 광경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른쪽이 답이 없으니 왼쪽을 봅시다. 어차피 울브스는 거의 항상 네베스와 무티뉴가 측면으로 전환을 때려주고 그 이후 공격을 들어가는 팀이었으니까, 왼쪽 아니면 오른쪽 공격을 봐야 합니다. 이 날도 네베스 무티뉴 전환은 괜찮았습니다. 무티뉴의 전환이 에이징 커브 왔을 때보다 좀 더 괜찮아졌다는 느낌도 받았네요.

 

좌측 보자 해놓고 이게 뭔가 싶지만, 롱패스 얘기를 잠깐만 하겠습니다. 어제 경기 보면 울브스가 중앙을 못 파니까 측면으로 볼 돌리면서 전진하고 공격하려는 빌드업 형태를 많이 보여주는데, 전환이 생각보다 느립니다. 아무리 후방을 거쳤다 가도 네베스 무티뉴가 있는데 왜 이랬을까요.

 

답은 주장님에게 있습니다. 울브스가 볼을 점유할 시 공격 진영에서 볼을 돌리다가 잘 안 된다 싶으면 한 타임 쉬고 미들진, 수비진이 볼 돌리고 다시 측면으로 가는 장면이 굉장히 많습니다. 여기서 당연하게도 코디는 볼을 매우 자주 만집니다. 이런 상황에서 코디의 롱패스가 많이 나오죠. 최후방 정가운데에 위치해서 좌우 윙백들에게 볼을 보내주는 그림. 그리 낯설지 않으실 겁니다.

 

그런데 노리치 전 코디는 롱패스를 단 8개밖에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성공은 4개. 원래 경기당 롱패스 15개는 찍는 선수인데 말이죠. 물론 롱패스 성공횟수요. 제가 오바하는 게 아닙니다. 승격 후 두 시즌 간 코디는 리그에서 모든 경기를 뛰었는데, 90분 당 롱패스 시도가 18.8회, 성공이 14.1회입니다. 코디의 롱패스가 이 경기에서 급격히 줄어든 건 감독의 지시가 없었다면 짐작해볼 수 있는 요인이 있긴 한데, 일단 아까 하던 측면 얘기부터 하죠.

 

어쨌든 이런 저런 이유로 측면으로 전환되는 속도는 더더욱 느려지고, 울브스는 측면에서 정적으로 상대 수비를 앞에 둔 채로 공격을 시도합니다. 물론 트린캉의 오른쪽 말고 황희찬과 누리가 있는 왼쪽에서 이런 플레이가 많이 나왔죠.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둘 다 상대를 못 뚫습니다. 황희찬이야 상대를 두고 드리블로 제쳐나가는 크랙 유형은 아니라고 해도, 누리는 드리블이 장점인데 노리치 전에는 그런 모습이 거의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경기마다 한 두 번은 나왔던 누리가 볼을 끌고 박스 안까지 들어가는 장면이 안 나왔어요.

 

이러면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누리 황희찬 둘 다 상대를 못 제치니 서로 볼을 내줍니다. 그런데 누리는 볼을 잡고 드리블을 친다 하면 시야가 본인 앞쪽으로 한정됩니다. 패스를 줄 때는 또 어느 정도 센스가 있는데, 그 두 가지를 동시에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황희찬은 패스나 터치가 둔탁하죠. 게다가 한 명이 볼을 잡고 있으면 상대 뒷공간을 파려는 움직임도 거의 나오지 않았습니다. 황희찬의 장점은 단순하게 뉴캐슬 전처럼 수비라인 뒷쪽으로 침투할 때 잘 나오는데 오히려 누리가 측면에 서고 황희찬이 하프 스페이스에서 볼을 받아주면서 이도저도 아닌 상황이 너무 많았습니다.

 

국내 커뮤니티에서는 아무래도 황희찬을 중심으로 보다 보니 누리를 욕하시는 분들이 많은 걸 볼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누리를 내리고 차라리 백업을 쓰라는 분들도 계셨는데, 만약 라즈가 이 경기 때문에 누리를 내리고 다음 경기에 마르살 카드를 낸다면 저보다 그 분들이 먼저 졸도하실 거라고 장담합니다. 이렇게 예상했다가 아주 보기 좋게 틀린 적이 있긴 하지만, 그때도 마르살과 트린캉이 못할 거라는 예상은 맞았습니다. 누리가 평소처럼 드리블을 시도하다가 아론스에게 털리고 그 이후에는 볼을 끌거나 뒤로 뺐지만, 마르살보다는 낫습니다. 정말로요.

 

저는 그래도 공격 -10 수비 -5 버전 누리보다는 그냥 누리를 보겠습니다.

 

그렇다고 측면만 문제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사실 중앙이 더 심각했어요.

 

이날 울브스는 볼 전진이 심하게 안 됐습니다. 울브스는 상대가 전방압박을 좀 강하게 걸면 앞에서도 말했듯이 전방에 있는 선수가 내려와서 받아주고 볼을 옆에 있는 동료에게 흘려주면서 올라가는 방식을 많이 쓰는데, 이게 그렇게 안정적이지가 않습니다. 이건 딱 3달 전 프리시즌 베티스 전, 라스 팔마스 전에도 쓰던 건데 그때도 압박 들어올 때 불안한 건 마찬가지였습니다.

 

노리치 전에는 그 문제가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일단 라울의 폼이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울브스의 공격에서 가장 중요한 건 누가 뭐래도 라울의 컨디션입니다. 그런데 이 경기에서 라울은 볼을 많이 잡지도 못했고 컨디션이 별로 좋지도 않았죠. 내려와서 받아주고 안 된다 싶으면 전방에 롱볼 때려서 라울을 바라보는데, 이런 전략의 성공률이 낮았습니다.

 

더 중요한 건 중원의 과부하입니다. 노리치는 3미들의 형태로 중원을 구성했고 울브스는 아시다시피 네베스와 무티뉴만을 중원에 둡니다. 수적으로 열세인 상황에 우군 골대를 바라보고 볼을 받아 돌아서면서 동료에게 볼을 내주고 안정적으로 전진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습니다. 앞서 말한 라울이 공중볼을 떨궈주는 것도 설사 라울이 경합에서 승리해 볼이 흐른다고 해도 중원에 노리치 선수들이 많았으니 성공하기 어렵죠.

 

그러면서 네베스와 무티뉴가 책임져야 하는 공간에 상대 선수가 많아집니다. 그와중에 센터백들은 자신의 수비력을 인지하지 못한 채로 달려들죠. 네베스가 옐로 카드를 받는 장면만 봐도 코디는 드리블 치는 상대를 보고 달려나갔다가 볼을 건들지도 못하고 제쳐지고, 무티뉴가 급하게 가서 태클을 하지만 빗나갑니다. 결국 네베스가 파울로 제지하면서 시즌 5번째 카드를 받게 됐네요. 팰리스 전에도 거의 비슷한 상황에 경고를 받았습니다. 결국 다음 경기 번리 전을 결장하게 됐죠. 이 경기에서 사와 함께 유이하게 평균 이상의 활약을 한 선수인데 말입니다.

 

롱패스를 날리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코디는 원래 압박을 받으면 롱볼을 못 날리고, 왼발 센터백 사이스 역시 앞으로 보내주는 패스의 퀄리티가 지난 시즌에 비해 확연히 떨어집니다. 코디와 사이스는 수비 상황에서도 얼을 타다가 제대로 걷어내야 하는 상황에 애매한 볼을 차는 경우가 너무 많았습니다. 특히 사이스의 헤더 클리어링이요.

 

의외였던 부분은 킬먼의 수비 역시 좋진 않았습니다. 우측에 서서 상대가 지속적으로 밀어붙일 때 제대로 공격을 억제하지 못했죠. 오히려 사이스가 대인 수비 면에서는 엄청 나쁘진 않았습니다.

 

우측이 뚫리는 현상은 역시나 아다마가 투입된 이후로 심화됐습니다. 트린캉의 답답한 플레이를 보고도 그를 빼지 않던 라즈는 결국 66분 경에 아다마와 트린캉을 교체해주는데, 몇 분 뒤 세메두를 빼고 덴동커를 넣으면서 아다마를 우측 윙백으로 돌려버립니다.

 

우리는 아다마를 투입한 이후 울브스의 전술적 움직임에 관해서 고심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팰리스 전도 그렇고 이번 노리치 전도 그렇고, 울브스는 전진이 잘 안 되는 후반 어느 시점에 아다마를 집어넣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다마에게 볼을 몰아주고 일단 드리블을 시키는 플레이도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측으로 볼이 가는 횟수가 줄어듭니다. 아다마는 노리치 전 20분 가량 뛰면서 드리블 시도를 두 번 밖에 하지 못했습니다.

 

아다마와 덴동커를 묶어서 출전시키는 것은 아마 아다마가 우측에 배치됐을 때 드리블을 하기 위해 수비 가담을 크게 지시받지 않으니 활동량은 좋은 덴동커를 함께 넣어서 커버를 하라는 포석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아다마를 아예 우측 윙백으로 옮기면서 오히려 수비는 더 털리고, 공격 시 영향력도 줄어드는 환상의 효과를 볼 수 있었습니다. 덴동커는 활동량은 좋지만 주력은 느린 선수여서 측면을 파는 자원들을 막긴 역부족이었죠.

 

트린캉은 전체적으로 기량 미달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줬고, 황희찬은 적극성과 섬세함이 부족하고 누리와의 연계가 전혀 안 됐습니다. 아다마는 원래의 파괴적인 드리블 마저도 잘 나오지 않으면서 실망만을 남겼습니다. 울브스의 2선에서 포덴세가 없으면 현재 딱히 믿을 만한 선수가 없어 보입니다.

 

신이 실존한다면 그의 이름은 주제 사일 겁니다.

 

칭찬할 건 사 밖에 없어 보입니다. 지속적으로 수비 뒷공간으로 침투하는 노리치의 스루패스를 빠른 타이밍에 튀어나오면서 잘 막아냈고, 결정적인 세이브도 두 세 차례 정도 해냈습니다. 현재 PL에서 PSxG-G 값이 가장 높은 키퍼는 첼시의 에두아르 멘디이고, 그 다음이 주제 사입니다. 사는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하는 선수임이 틀림없습니다.

 

경기가 중구난방이어서 글도 중구난방으로 써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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