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리가의 마지막 스페인 득점왕, 다니엘 귀사 이야기 [Tifo Foot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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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리가의 마지막 스페인 득점왕, 다니엘 귀사 이야기 [Tifo Foot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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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 18일 기존 블로그에 포스팅했던 글을 겨온 것입니다.

라리가에서 가장 많은 득점을 한 선수에게 주어지는 피치치 트로피를 스페인 선수가 수상한지 이제 11년이나 지났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리오넬 메시가 그 중 8개를 가져갔고, 우루과이의 디에고 포를란과 루이스 수아레즈가 나머지 2개를 수상했다. 라리가의 마지막 스페인 득점왕을 찾기 위해서는 2008년까지 가야 한다. 오늘의 주인공, 마요르카의 다니엘 귀사(Dani Guiza)이다.

 

귀사는 전형적인 ‘흠이 있는 천재’였다. 엄청난 재능을 가진 공격수였지만 나태한 태도와 문란한 사생활로 인해 빠르게 망가졌다. 1980년 헤레즈에서 태어난 그는 고향팀에서 첫 성공을 맛본다. 그 팀은 귀사의 재능에 걸맞지 않는 스페인 3부리그였고, 엄청난 돈을 가지고 있지도, 미래가 기대되는 실력도 없는 팀이었다.

 

그래서 1999년, 그는 라리가의 마요르카가 관심을 보일 만큼 충분한 잠재력을 보여줬고, 마요르카는 결국 그를 영입한다. 이는 이상한 결정이었다. 귀사는 훈련에 빠지고 밤 늦게까지 쾌락을 즐기기로 유명한 선수였기에, 선수들이 경기장 밖에서는 개인의 삶을 즐기도록 적극적으로 장려하는 마요르카와 멈추지 않는 파티가 벌어지는 섬에서 그의 잠재력을 발현시킬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보였다.

 

그는 그의 첫 시즌을 고향 헤레즈의 도스 헤르마나스 임대와 마요르카 B 팀에서 나누어 보냈다. 두 팀을 통틀어 37경기에서 19골을 넣은 그는 마요르카의 감독 루이스 아라고네스의 눈에 들었고, 귀사는 이후 퍼스트 팀으로 승격한다.

 

아라고네스의 전임자 페르난도 바스퀘즈는 19세의 귀사를 1999-00 시즌의 끝자락에 데뷔시켜 줬지만, 엄격하기로 악명 높았던 아라고네스는 귀사의 요행을 완벽하게 통제했고, 그의 임팩트도 2000-01 시즌 라리가에서 1골 밖에 못 넣을 정도로 작았기에 시즌 말미에 귀사는 다시 B팀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그는 3부리그에서 2시즌 동안 28골을 넣으며 다시 불이 붙은 활약을 보여주며 환상적인 재능을 잘 발휘하는 것 같았다.

 

2002년 마요르카는 그를 다른 라리가 클럽에 노출시키지 않으면서도 정신이 산만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레크레아티보 데 후엘바라는 또다른 클럽으로 임대 보냈다. 그러나 득점 없이 4경기에 출전한 후 복귀했고 곧 자유계약으로 방출됐다. 그런데 바르셀로나 B 팀이 예기치 않은 생명줄을 던져줬다. 귀사는 한 시즌 동안 3개의 슈팅 당 한 골 씩 밖에 넣지 못하며 결국 실패했지만, 이 이적은 연쇄적인 효과를 나타내 그가 부활하는 계기로 작용한다. 세군다 디비시온 승격에 실패한 바르셀로나 B팀에서의 귀사의 5골은 그해 세군다 B(3부리그)에서 승격한 시우데드 데 무르시아의 관심을 받았고, 무르시아는 세군다 디비시온으로 승격한 공격진을 강화하기 위해 그를 데려왔다.

 

그는 재능 있는 선수였기에 이 이적은 초기에 많은 칭찬을 받았다. 재능을 만개하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쓸 만한 선수로 알려져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산만한 모습을 보였지만, 어떤 괴상한 감독이 그를 좋은 선수로 만들었다. 무르시아의 후안마 리조 감독은 귀사와 관련된 경기장 밖에서의 에피소드들을 거의 1주일에 한 번 씩 만들어냈지만, 24살의 마요르카 선수에게 리조 감독은 잘 맞는 것 같았다. 그는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쓸 줄 아는 사람이었고, 귀사는 두 시즌 동안 36골을 넣으며 행복한 무르시아 생활을 보냈다.

 

무르시아는 결국 승격이라는 목표를 이뤄내지 못했지만, 귀사는 2005년 베른트 슈스터 감독의 헤타페와 계약을 맺으면서 라리가로 승격했다. 거기엔 위험이 따랐다. 클럽의 회장 앙헬 토레스는 귀사에게 호날두 같은 최고의 피니셔 역할을 요구했지만, 이 선수는 평생 동안 어떤 틀에 갇혀 있는 것을 거부해온 선수였다 – 그리고 그것은 이미 증명되었다. 그는 이적하기 전에 아내와 복잡한 절차를 거친 후 이혼하며 아이와 떨어져 살게 됐고, 이 스캔들은 메이저 언론들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이 25살의 선수는 마드리드 남부에서 사회적으로 힘겨워하고 있었고, 이는 이후에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위염을 겪는 사태로써 드러난다. 헤타페는 귀사에게 액체 식품 다이어트를 지시했다. 그 당시에 기자들은 그를 흥청망청 놀기만 하는 사람으로 묘사했다 – 언젠가 기자에게 ‘밤 시간이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라고 말한 것은 유명하다 – 그러나 그는 상당히 위태로운 상황이었고, 도움을 필요로 했다.

 

도움을 준 것은 그의 부인, 누리아 베르무데스였다. 귀사는 동반자이자 에이전트인 누리아를 만난 이후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그 예시로, 귀사는 재혼 후 커리어 중에서 가장 좋은 폼을 꾸준하게 보여줬고, 2007년에는 전 대회를 통틀어 17골을 득점하며 헤타페를 UEFA 컵에 진출시켰다. 베르무데스는 그해 여름 마요르카 복귀를 추진했고, 이후 귀사는 반짝반짝 빛나는 시기를 맞이한다. 그레고리오 마자노 감독은 귀사를 중심으로 팀을 구성했고 귀사는 끊임 없이 골을 넣으며 마자노 감독에게 보답했고, 마요르카의 순위를 끌어올렸다.

 

페널티킥을 차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라리가에서만 27골을 넣으며 시즌을 마무리했고, 세르히오 아구에로, 라울, 다비드 비야를 앞서면서 피치치 상을 수상했지만 마요르카는 7위 밖에 되지 않았다.

 

이 시즌 이후 귀사는 다비드 비야, 페르난도 토레스와 함께 유로 2008의 스페인 대표팀에 차출되었다. 그는 조별리그 그리스 전에서 결승골을 넣었고, 4강 러시아 전 스페인의 세 골 중 한 골을 담당했으며, 결승 독일 전에도 마지막 12분 간 출전했다. 그 날 스페인은 비엔나에서 1-0 승리를 차지했다. 그는 이후 스페인 대표팀으로 9경기 밖에 출전하지 못했다. 그의 전성기 폼은 유럽 최고 수준이었고, 프리미어리그의 토트넘 핫스퍼를 포함해 많은 팀들이 그에게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그는 결국 2008년 여름에 터키 수페르리가의 부유한 팀 페네르바체로 이적하게 됐다. 그는 터키에서도 성공을 맛봤다. 3년 동안 건강을 유지하면서 2009년에는 터키 컵을, 2011년에는 수페르리가 우승을 따냈고, 그 해에 헤타페로 이적하며 스페인에 복귀했다. 하지만 귀사는 그의 2007-08 시즌 폼을 다시는 재현할 수 없었다. 사실, 그는 이후 리그에서 한번도 12골 이상을 넣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업적은 오랫동안 회자될 것이다. 그는 스페인 축구 역사에서 유일하게 마요르카 소속으로 피치치 트로피를 딴 선수와 2000년 이후 라리가 득점왕을 차지한 스페인 선수 3명 중 1명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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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qmBu_14aJWk

(사진: Tifo Football 유튜브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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