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누가 울브스 현지에서는 지지를 받은 이유 [FA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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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누가 울브스 현지에서는 지지를 받은 이유 [FA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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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누누가 경질됐습니다. 사실 제 예상보다는 좀 늦게 경질됐어요. 초반 3연승 중 두 경기가 거의 지는 경기였고 울브스가 그거 하나만 잡았어도 5위였을 텐데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이 사람의 전술적인 부족함은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이 말했고 저 역시도 지속적으로 언급했으니 차치하고, 누누가 똑같이 경기를 풀어가고 똑같이 팀을 운영해도 울브스에서는 됐고 토트넘에서는 안 됐던 이유들을 몇 가지 말해볼까 합니다.

 

혹시 제가 누누 전술 등 비판하는 글 보고 싶으시면 누누 아웃! 울브스 팬들이 이 달의 감독 누누에게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 ②단점/ 내 살다살다 누누와 체계적인 압박이 같은 문장에서 나오는 꼴을 보네 - 해외축구 - 에펨코리아/ [울브스] 맨유 전 리뷰: 모래성도 쌓다 보면 기대가 생긴다 — FASTory/ 울브스, 남은 시즌과 앞으로의 이야기 [FASTory]/ 토트넘에 간 누누, 그가 안 되는 이유 - 1부(공격과 수비) [FASTory]/ 울브스는 왜 이기질 못할까? [FASTory] 이런 글들 보시면 됩니다. 찾아보시면 더 나올지도. 사실 대충 ㅇㅇ 전 리뷰라고 써져 있는 글들은 거의 대부분 누누 까는 글입니다.

 

일단 기본으로 깔고 가야 하는 것이, 누누가 울브스에서는 이룬 것이 있고 토트넘에서는 전무한 사람이었다는 겁니다. 그의 전술적 하자와 지루한 경기력은 현지에서도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이고 현 감독 라즈가 그런 경기력을 보여주면 엄청나게 까일 겁니다. 이미 리즈 전에 누누와 비슷하게 득점 이후 내려앉는 전략을 가져갔다가 무를 캐고 팬들의 비판을 받긴 했죠.

 

저를 비롯한 대다수의 한국 울브스 팬들은 누누를 굉장히 싫어하지만, 현지 울버햄튼 팬덤에서는 굉장히 지지가 탄탄한 사람이었습니다. 팬 계정들도 여태까지 누누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반대 의사를 내비치는 사람은 하나 밖에 못 봤어요(인스타그램에 Wolves.Alex라고 있습니다).

 

현지 팬들은 축구를 잘 모르는 것 같고 답답할 때도 많지만 저는 그래도 현지팬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태어날 때부터 한 클럽을 응원하면서 평생 이 팀에 입장료를 내고, 직접 경기장에서 목소리를 내고, 로얄티를 가진 사람들이 현지 팬들이니까요. 당장 이번 토트넘의 누누 경질만 봐도 맨유 전 팬들의 엄청난 야유의 영향이 없지 않았죠.

 

이런 현지 팬들은 누누를 좋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 울브스가 1부리그에 올라와 있는 것 자체가 굉장히 성공적인 일입니다.

당시 프리미어리그는 기본적으로 깔고 가는 게 아니라 희망이었을 뿐이었다. 울브스는 거의 40년을 방황했다. 2016년 이전 32년 간 그들이 1부리그에 있었던 건 네 시즌 뿐이었다. 모든 걸 지배하면서 리그와 FA 컵을 우승한 1949-1960 스탠 컬리스의 울브스와 리그컵을 따고 UEFA 컵 결승까지 진출했던 1972-1980의 울브스를 몸소 체험했거나 이들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들은 팬들은 평범하고 수준 미달인 팀이 비참하고 부끄러운 실패를 거두는 데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데이브 존스와 믹 맥카시 임기 때의 좋은 시절도 있긴 했지만, 프리미어리그 시대에 들어선 뒤로 울브스는 잉글랜드 전 클럽을 통틀어 15위 이상으로 올라가 본 적이 없었다.
-https://fastory.tistory.com/398 푸싱 인수 5주년: 문화의 변화와 감독들, 승격과 미래 [디 애슬레틱]

그 전설적인 스티브 불도 데뷔할 적 WBA에서 몇 경기 뛴 거 말고는 프리미어리그 무대를 밟아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잉글랜드 대표팀에 소집됐다는 게 이 사람의 대단함을 설명해주는 거긴 하지만요.

 

어쨌든 푸싱이 인수를 한 뒤에도 울브스는 로페테기 선임 실패 이후 발테르 젠가와 폴 램버트가 차례로 말아먹으면서 2부 중하위권에 머무르고 있었습니다. 그런 팀에 누누가 부임해서 압도적으로 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하고 FA컵 4강 진출, 유로파리그 진출, 프리미어리그 7위 등극 같은 업적을 세워내니 현지에서는 지지하는 게 당연할지도 모르죠. 1970년대 이후에 태어난 팬들은 자기가 응원해온 팀이 그동안 한번도 본 적 없던 성과를 거두게 해주는 감독인데 싫어할 리가요. 2부에서 멘데스의 도움을 받아 네베스, 조타, 카발레이루, 엘데르 코스타 같은 리그 수준을 뛰어넘는 선수들을 영입하면서 우승하면 안 되는 스쿼드를 구축한 건 맞지만, 현지에서는 누누가 새로운 전성기를 맞는 울브스의 완벽한 상징으로 자리잡았습니다.

 

그래서 누누가 뭘 해도 지지해주는 팬들이 많이 생겨났는데, 실제로 극악의 경기력과 성적을 보여주면서 사임(사실상 경질)한 지난 시즌 중에도 누누 아웃을 외치면 현지 팬들에게 집중 포화를 받았습니다. 보통 당시에 한국 축구 커뮤니티에서 누누 아웃이라고 하면 울브스에 관심이 없는 타팀 팬들이 '원래 울브스가 딱 2부 수준 아니었냐? 왜 이렇게 바라는 게 많아?'하면서 깝니다. 울브스의 전력이나 경기력 그런 건 관심이 없으니까 그냥 그렇게 심플하게 깔 수 있는 거죠.

 

근데 현지에서는 비슷한데 다른 얘기들이 나왔습니다. Please Nuno out 이런 댓글 달아두면 현지팬들이 와서 댓글을 다는데, 막 썰을 풉니다. 울브스가 예전에는 어쨌고 저쨌는데 누누가 부임하면서 얼마나 올라왔고 이게 다 누누 덕이다... 이런 내용. 한국에서 까이는 거랑 골자는 비슷한데 현지는 너무 팀을 오래 봐왔으니까 나오는 리액션이 많았죠.

 

한국 팬들은 대부분이 2부에서 올라오는 시점, 아니면 뭐 네베스의 이적 등을 기점으로 응원하게 된 팬들이 많고 저 역시도 1부 승격 이후로 이 팀을 팠으니 팀의 현재 구성 상태와 경기력, 결과만 보고 판단을 많이 했죠. 어쩌면 현지에서는 감성이 좀 우선됐을 수도 있는데 한국에서는 그냥 선수 구성이 이렇게 괜찮은데 경기력이 저렇게 안 좋은 게 말이 되냐. 이런 식으로 팬 여론이 형성됐습니다. 한국에서 2012년부터 응원한 사람도 있긴 한데 그건 그 사람이 정말 특이 케이스고 거의 2017년 이후부터 본 팬들이에요.

 

어쨌든 누누는 현지에서 영웅적인 입지를 가지고 있었고, 웬만해선 까이질 않았다고 보시면 됩니다. 토트넘 가서 더 심해진 것도 있긴 한데 비슷하게 못해도 누누 퇴진해라 이런 여론은 단 한번도 주류에 가까이 간 적이 없었어요.

 

無교체는 문제가 없나? 결과가 울브스의 소규모 스쿼드 이론이 옳음을 증명해주나? [디 애슬레틱]

 

교체와 선수단 운영부터 봅시다. 누누가 만든 울브스라는 팀은 굉장히 작은 규모의 선수단을 굴리면서 로테이션이나 교체가 극도로 적은 팀이었습니다. 그 후유증이 지금의 미드와 수비 뎁스 부족이라는 문제로 이어지고 있는 거고요.

 

사실 울브스의 누누는 토트넘 때보다 더 보수적이었습니다. 이때는 교체를 안 하는 것뿐만 아니라 로테이션도 안 돌렸어요. 그 정점을 찍은 것이 유로파에 진출했던 2019-20 시즌이죠. 2차 예선으로 가서 가장 먼저 시즌을 시작해놓고 유로파 8강까지 진출하면서 400일 짜리 시즌을 돌리는데 컵대회 로테이션도 별로 안 합니다. 거의 처음 들어보는 팀들 상대로도 코디, 무티뉴, 라울 같은 선수들은 나왔어요. 무티뉴는 결국 저때 4000분 뛰면서 한 단계 내려온 듯한 느낌. 코디도 지난 시즌 소튼 전에 코로나 이슈 아니었으면 한 150경기 연속 90분 출전 했을 겁니다.

 

처음에 말했듯이 이런 게 욕을 안 먹은 이유는 누누가 울버햄튼에서 가졌던 그 위상 때문이 큽니다. 근데 이런 운영을 하면서 팀을 어느 정도 끌고 갈 수 있었던 건 누누의 스타일과 기적에 가까웠던 부상 관리가 아주 큰 비중을 차지했어요.

1월 초, 울브스는 6명의 퍼스트팀 선수들이 없는 채로 브라이튼 원정을 떠났다. 1군 선수단을 18, 19명 정도로 유지하는 팀에게 6명은 아주 큰 숫자이다. 벤치에는 두 명의 골키퍼와 프리미어리그에서 1분도 뛴 적이 없었던 선수들 5명이 앉았다.
6명은 그리 크지 않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중략)... 하지만 2018-19 시즌 전체를 통틀어 부상이 5번 (3주 이상의 휴식을 요했던 부상만 기재) 밖에 없었던 울브스에게 이런 상황은 매우 낯설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험해본 시즌 중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가장 힘에 부치는 해가 바로 올 시즌이기에, 충분히 이해 가능한 상황이기도 하다.

-https://fastory.tistory.com/352 울브스는 축구 역사상 가장 힘겨운 시즌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가? [디 애슬레틱]

누누의 수비 축구는 PPDA가 리그 최저를 찍게 했고, 안토니오 디아스를 필두로 한 메디컬 팀은 선수들의 부상을 최소한으로 줄였습니다. 라울은 여태 울브스에서 두개골 부상으로 아웃된 적 밖에 없다는 게 놀라울 정도로 동선을 늘려놓긴 했지만, 3년차까지는 거의 부상 걱정이 없는 팀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시즌에는 라울, 볼리, 포덴세, 네투, 조니, 덴동커, 무티뉴 등이 빠지는 타이밍이 모두 나왔고 결국 이걸 버텨내진 못했습니다. 물론 이때도 현지의 지지는 무너지지 않았지만요.

 

전술도 마찬가집니다. 똑같이 그때도 볼을 전진시키는 게 어려웠고, 수비도 엉성했어요.

 

근데 제 블로그에서 누누를 검색해보시면 글의 톤이 둘로 나뉩니다. 팀 스피어스가 쓴 디 애슬레틱 글과 제가 쓴 글이 완전히 달라요. 디 애슬레틱 기자들이 대체로 내부에서 소스를 받아 쓰니 어용 기자 성격을 띠면서 선수들과 감독을 대변하는 위치의 글을 많이 쓰긴 하는데, 스피어스도 그 라인에 속해 있습니다. 어떻게든 희망을 찾아내서 누누의 좋은 점을 부각시키는 느낌의 기사가 상당히 많았고, 현지 팬들도 대부분 그런 기사들에 동조했습니다.

 

아, 그리고 추가할 얘기가 있습니다. 타임즈에서 누누가 훈련 시 포르투갈어를 쓰면서 통역해달라는 부탁을 했다는 기사가 나왔는데, 이건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콤튼에 있으면, 당신은 포르투갈어를 정말 많이 듣게 될 것이다. 코치 미팅은 포어로 진행되고 포르투갈 선수들도 서로 모국어로 대화한다. 그러나 팀 토크는 언제나 영어로 진행됐고 (6개 국어를 구사하는 누누가 한 선수에게 따로 디테일한 지시를 하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선수들은 그룹 내에서 적극적으로 영어를 내뱉는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초창기보다 영어 실력을 크게 늘렸다.
-https://fastory.tistory.com/345 울브스의 포르투갈 레볼루션 [디 애슬레틱]

영어도 잘하는 편인데 누누가 굳이 포르투갈어를 고집할 이유가 없죠. 영국에서 산지만 5년째인데.

 

기자 회견에 관해서도 불만 갖는 분들이 많으시던데, 5년 간 똑같은 말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솔루션을 찾아야 한다. 이런 원론적인 이야기들. 그게 울브스에서 처음 3년은 통했고, 마지막 1년은 좀 답답하다는 의견들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지지 기반이 전혀 없는 토트넘에 가서 그걸 하니 통할 리가 없죠.

 

울브스 시절 누누는 팬들과도 굉장히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감독이었습니다. 일례로 지난 시즌 마지막 경기였던 38라운드 맨유 전을 보면 알 수 있어요. 경기가 끝나고 응원가를 불러주는 팬들 앞에서 세레머니를 하면서 감사를 표하는. 누누를 정말 안 좋아했지만 이 장면은 굉장히 가슴이 찡했습니다.

 

그렇게 처음부터 2부리그에 안 맞는 지원 받으면서 성공하고 팬들의 응원만 많이 받던 감독이 토트넘을 가서 교체할 때 야유 세례나 받으니... 풍전등화와도 같았던 누누의 토트넘 임기는 이리 짧게 끝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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