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진 건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실점한 것도 유스들 대거 투입한 후반에 나왔고, 아직 첫 경기에 주전들 대부분이 빠져 있고 선수들 폼도 안 올라왔으니. 누누의 토트넘은 4부리그와 비겼으니 놀림 받을 일도 없어 다행이다. 동시간대라 보진 못했는데 역시나 팬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진 못한 모양이다.
어쨌든 크루 전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 몇 가지를 적어보려 한다.
가장 중요한 건 라울의 복귀다. 첫째도 라울, 둘째도 라울. 라울이 어떤 위상을 가지고 있는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귀찮기도 하고. 라울 히메네스 이야기 - 멕시코 길거리에서 울브스의 주포까지 [디 애슬레틱] — FASTory 궁금하신 분들은 참고하기 바란다.
여튼 라울이 성공적으로 복귀했다. 머리에는 헤어 밴드를 매고. 33분 정도 밖에 안 뛰긴 했는데, 아마 순차적으로 몇 분씩 뛰는 걸 체계적으로 정해 놓지 않았을까 싶다. 이번에는 1/3 정도만 뛸 예정이었던 것 같다. 아마 프리시즌이 진행될수록 하프타임까지 뛰는 것도 보고, 운 좋으면 풀 경기까지 보여줄 것 같다. 누누도 나름 조니가 부상 복귀한 이후로 안전하게 관리해줬던 터라 다른 피트니스 관련 코치들이 잘 짜 뒀을 거라고 본다(물론 조니는 지금 또 한번의 십자인대 부상으로 아웃되긴 했지만 누누가 조니 관련해서는 발언권이 있다. 한 4-5경기 걸쳐서 풀타임에 맞춰줬던 걸로 기억하는데 훈련에서 다쳤으니 뭐).
라울이 경합해주면서 헤더를 따내는 장면은 이 경기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다. 전에도 풀 트레이닝 복귀니 뭐니 할 때 다 검사 받긴 했겠지만 직접 눈으로 보는 건 다르니까. 부상 전이랑 플레이도 비슷했다. 내려와서 볼 받아주고 경합한 뒤에 전방 혹은 측면의 동료 바라보는 거. 패스는 좀 끊기긴 했지만 경합이 됐다. 패스는 매치핏 끌어올리면서 차차 돌아올 거라고 믿는다.
프리킥도 찼다. 심지어 골대를 맞췄다. 생각보다 되게 잘 차서 놀랐다. 내가 울브스 팬한지 얼마 안 돼서 그런 건진 모르겠는데, 라울이 데드볼을 차는 건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부상에서 돌아왔다고 예우를 갖추거나 그런 건 아닌 것 같고, 그냥 진짜 찰 선수가 없어서 라울이 찬 것 같다. 네베스, 네투, 포덴세, 무티뉴 다 없는데 누가 차. 검소하기 그지없는 라인업에서 라울이 한번 찼다고 생각하는 편이 맞을 것 같다.
라울의 내려와주는 움직임을 떠올리면서 생각난 건데, 라즈는 스트라이커가 내려와서 빌드업 플레이에 가담하는 걸 굉장히 선호하는 것 같다. 최후방에서 꾸준히 센터백이 벌리고 중원으로 바로 볼을 내주는 패스가 나왔다. 모건 깁스-화이트와 테일러 페리가 442 투미들에 나왔는데 이 둘이 받아줄 때도 있었고, 파비우 실바나 라울이 받아줄 때도 있었다. 투톱 중 하나가 내려와서 볼을 받아주는 때가 꽤나 많았다. 다만 좀 불안했던 건 낮은 위치에서 볼을 받아줬으면 옵션을 여러 곳으로 만들어줘야 하는데 라울이 디펜시브 써드까지 내려와서 압박 받고 있음에도 제대로 패스를 리시브 해줄 선수가 나타나지 않는 장면이 있었다. 이런 건 고쳐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뺏기면 센터백도 벌려지고 풀백은 올라간 상황이라 너무 위험하다. 좀 더 안정적으로 갖출 필요가 있다.
라즈 전술 얘기를 조금만 더 해보자면, 이 센터백 벌려 놓고 하는 빌드업에 더해서 압박이 기억난다. 누누 때는 압박이 없었다. 내가 누누를 정말 싫어하는 수천가지 이유 중 하나이다. 어쨌든 누누는 언제 압박을 들어가고 압박 체계는 어떻게 되고… 이런 기본적인 것들을 하나도 갖춰 두지 않았다. 요즘 블로그에 댓글도 달아주시는 존경하는 핸드메이드픽션님이 번역했던 자료를 하나 보자.
누누 시절에 이런 게 제대로 있었냐는 말이다. 어차피 전방에 숫자도 없어서 압박을 제대로 들어갈 수도 없다. 결국은 네투나 라울이 한 10초쯤 스프린트 가져가면서 상대의 전진을 미세하게 늦추는 게 끝이었다. 그런 건 압박이 아니다. 그냥 뺑뺑이 도는 거다.
근데 이번 크루 전에는 약간 그런 단서가 나왔다. 상대가 풀백한테 볼을 주면 선수들이 달려들어서 뺏으려 하는 플레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거의 같은 타이밍에 주변 선수들이 길목 차단하고 상대의 전진을 막은 뒤 볼을 빼앗았다. 이런 플레이가 지속적으로 나오면 좋겠다.
그리고 측면과 하프스페이스를 중심으로 빠르게 주고받으면서 전진하는 공격이 많이 나왔다. 뭐 모깁화나 누리 같은 선수들의 특성 때문도 있겠지만, 빠르게 올라가고 하는 건 라즈의 스타일이 어느 정도 반영됐다고 생각한다.
전과 달리 라인도 높게 올리고 선수들도 많이 전진했다. 다만 공격 시 라인을 높게 올리다 보니 상대가 뒷공간으로 한번에 때려주는 롱볼을 통해 공략을 시도했는데, 이 부분에 대한 대비는 필수적이다. 이적시장 시작할 때 딘 헨더슨 영입을 문의했다는 썰이 있는데, 주제 사도 어느 정도 스위핑은 해줘야 할 것이다.
선수 평가를 조금 해보자. 일단 데뷔전을 치른 트린캉부터. 드리블은 괜찮아 보였다. 근데 본인이 보기에 줄 곳이 마땅치 않으면 좀 길게 드리블을 치는 경향이 있었다. (안 좋을 때의) 아다마 2호기가 나온 건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거다.
누리가 그 반대에 왼쪽 윙어로 나왔다. 네투 포덴세 아다마 다 없어서 이렇게 나온 거긴 한데, 드리블도 좋고 패스도 좀 창의적으로 되는 편이라 장기적으로 442 측면 미드필더를 노려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물론 지금은 풀백을 서야 하겠지만.
수비는 딱히 적을 게 많진 않았는데, 킬먼 대인 수비가 좋았다는 것 정도? 상대가 드리블 치고 들어올 때 무빙 디펜스도 꽤나 탄탄했다. 전환패스도 기가 막히게 돌려준 장면이 하나 나왔다. 그리고 라즈가 센터백을 직접 전진시키는 것도 실험을 해본 것 같다. 킬먼이나 볼리가 직접 볼을 몰고 올라가는 장면이 어느 정도 나왔다. 이 분야에서는 울브스 최고라고 할 수 있는 사이스가 후반에 나와서 직접 전진을 하진 않았는데, 이런 플레이도 간헐적으로 나오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수비는 안정감이 우선이고 라인을 올려놨으니 속도 있고 수비 좋은 센터백을 새로 영입하는 건 무조건 최우선 목표로 이행돼야 한다.
모깁화는 전처럼 주고 들어가는, 말하자면 아스날의 에밀 스미스 로우 식 패스 앤 무브가 괜찮았다. 원래도 이런 건 잘했다. 어떤 대머리가 윙에 썼을 때 잘 못하긴 했지만, 충분히 키워볼 만한 선수다. 페리도 생각보다 잽싸고 활동량 되고 패스도 빠르게 내주는 것 같았다.
실바는 확실히 지난 시즌 후반기 거치면서 몸싸움이 많이 늘었다. 정말 좁은 지역에서도 자기 공간을 지킬 줄 아는 선수가 되었다. 누누가 시켰겠지만 선수 개인으로 더 좋은 선수가 되었다.
후반에 들어온 선수 중에는 쳄 캠벨이 눈에 띄었다. 좌측에 나와서 드리블도 좋고 빠르게 전진할 줄 알았다. 중앙으로 치고 들어오는 플레이도 좋았다.
아 그리고 다른 의미로 눈에 띄었던 선수는 오타소위였다. 개인적으로 오타소위를 선호하는 편인데 계속 이렇게 패스를 안일하게 하고 압박에서 지킬 준비도 안 돼 있으면 나올 수가 없다. 내가 이 선수를 중앙 말고 측면에 기용해봤으면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패스가 너무 맥이 없다. 좀 부담 없이 쫄깃한 드리블로 전진할 수 있는 포지션을 줘봤으면 한다.
그리고 유니폼이 잘 뽑혔다. 카스토어라 울브스 전용 디자인을 만들어준 것 같다. 스타킹에 울브스 로고 박혀 있는 것도 아주 좋았다. 한자 저것만 좀 뺐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