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엘사 패러독스: 어떻게 영향력이 큰 감독이 독특하기까지 할 수 있을까? [디 애슬레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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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엘사 패러독스: 어떻게 영향력이 큰 감독이 독특하기까지 할 수 있을까? [디 애슬레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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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어로 ‘광인’이라는 뜻입니다. 
마르셀로 비엘사 감독의 별명이죠. 
괴팍한 성격에, 축구에 미친 그에게 잘 어울리는 별명입니다. 
저는, 그런 비엘사가 궁금했습니다. 
저렇게 해도 시즌 운영이 될까? 
처음 감독을 시작했을 때에도 지금 같은 전술을 구사했을까? 
누구에게 영향을 받았고 또 누구에게 영향을 줬을까? 
그리고 어떻게 저런 감독이 있을까? 
‘비엘사 시리즈’는 그런 연유에서 탄생했습니다. 
누구보다 비엘사 전문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에 대한 글들을 번역해보기로 마음먹었죠. 
축구계의 진정한 광인, 비엘사에 대해 알아봅시다.

비엘사 시리즈#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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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즈 유나이티드가 챔피언십 타이틀을 우승하고 2020-21 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 첫 경기를 치르기까지의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우리는 현대 축구에 전례 없던 영향력을 행사하던 마르셀로 비엘사가 축구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감독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쉬지 않고 했다.

 

그 후 리즈는 안필드에서 개막전을 치렀고 디펜딩 챔피언에 4-3으로 아쉽게 패했지만 프리미어리그 어떤 팀과도 비교할 수 없는 축구를 했다. 그건 아마 현대 축구의 그 어느 팀에도 비견할 수 없는 스타일의 축구였다 물론 비엘사가 지휘했던 시절의 칠레나 아슬레틱 빌바오를 제외하면 말이다.

 

이 이야기는 여태까지 해답을 찾을 수 없었던, 아주 분명한 의문을 남긴다. 현대 축구의 기틀을 잡아 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영향력이 큰 감독이 어떻게 여타 감독들과는 전혀 다른 전술을 구사하는 걸까?

 

영향력이라는 개념은 아마 축구 역사상 이 정도로 중요하게 여겨진 적이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건 이 세대의 연예인 같은 것이 아니라, 인플루언서이다. 그러니까, 유명한 감독이 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행동에도 영향을 미치는 위치까지 올라야 한다.

 

이런 개념은 특히 축구계에서 확실히 드러난다. 예를 들어, 당신은 사비 에르난데스가 조세 무리뉴를 비난했던 일을 기억할 것이다. 무리뉴는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트로피를 많이 땄다고 자길 스페셜 원이라고 하고 다니죠 근데 누가 빅이어를 들었던 인테르 팀을 기억해주나요? 내가 보기에 무리뉴는 자신만의 유산을 남기지 못했습니다. 요한 크루이프 같은 감독들과는 다른 거죠.

 

사비 같은 축구 강박자들은 언제나 축구라는 스포츠의 발전을 좇아왔겠지만, 각기 다른 네 나라에서 모두 우승컵을 든 감독의 업적을 축구사의 발전에 한 획을 긋지 못했다는 이유로 낮게 평가하는 경향은 현대에 들어서 더 강해졌을지도 모른다.

 

한때 축구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를 꼽았던 사람들도 이제는 이 스포츠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인플루언서들에 관해 말한다. 해설위원 존 드리스콜은 The 50: Footballs Most Influential Players이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그래서 비엘사의 영향력은 얼마나 큰가? 진짜 현실과 신화 사이의 가장 큰 모순은 볼 소유권이 없는 상황에서의 그의 접근법이다. 리즈는 최후방에 스페어맨 하나만을 남겨두고 피치 전 지역에서 상대를 강하게 맨마킹 한다. 결과적으로 비엘사의 팀은 다른 모든 클럽들이 경기 계획의 가장 기본적인 부분으로 여기는 전형적인 수비 대형에서 완전히 탈피한다. 리즈의 선수들은 정말 힘들 정도로 경기장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자신의 마킹 상대를 쫓아다닌다.

 

칼빈 필립스는 본지 필 헤이와의 인터뷰에서 리즈가 볼을 빼앗겼을 때 어떤 생각을 하고 움직이냐는 질문에 가장 먼저 생각하는 건, 내 마킹은 어디 있지?예요. 라고 답했다. 주위를 훑어본 뒤 최대한 빠르게 내 수비에게 가까이 붙어야죠. 만약 이미 마킹 근처에 있다면, 내가 좋은 위치에 있는 거고 대형도 완성된 거예요. 그렇지 못하면 내 수비와 볼 사이의 패스 길목을 막아야 해요. 내 상대가 볼을 잡고 그 근처에 내가 없다면, 그건 문제가 되니까요.

 

내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그가 없다면, 난 완벽히 잘못된 위치에 서 있는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항상 맨투맨 수비를 사용했기 때문에 보다 쉽게 이런 상황에 대처할 수 있죠.

 

이런 말들은 비엘사 휘하의 리즈 경기를 많이 봤던 사람들에겐 딱히 놀랍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내 수비가 근처에 없으면 난 완전히 잘못된 위치에 서있는 것이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리즈를 제외한 모든 프리미어리그 클럽들은 선수들의 포지션을 상대보다는 지역을 기준으로 배정한다.

 

상술한 4-3 리버풀 경기 사진에서 그러한 시스템의 예시를 볼 수 있다. 리즈의 접근법은 명확하다 중원부터 살펴보면 리즈에겐 딱히 포메이션이랄 것도 없다. 스트라이커 포지션에서 중원으로 내려와 리즈의 맨마킹 시스템을 시험하고 있는 피르미누를 제외하면 모든 리버풀 선수들이 밀착 마크를 당하고 있다.

 

이 경우, 센터백 파스칼 스트루익이 아무리 비엘사의 시스템이라 해도 피르미누의 위치까지 가는 건 무리수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후방에 머물러 피르미누를 가리키는 스트루익을 보면 리즈의 모든 이들이 현 상황을 이해한다. 왼쪽 윙어 잭 해리슨이 혼자서 먼쪽에 위치해 있는 것 또한 눈 여겨볼 만하다. 그는 팀동료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자신의 마킹인 트렌트 알렉산더-아놀드를 홀로 수비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앤디 로버트슨이 볼을 쥐고 있는 상황에서 리즈의 대처법을 알아보았다. 비엘사는 다른 감독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는데, 특히 디에고 시메오네와 마우리시오 포체티노는 비엘사의 제자 출신 감독이다. 비슷한 상황, 리버풀 전에서 그들은 어떤 모습을 보였을까?

 

지난 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서 리버풀을 탈락시켰던 시메오네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사진을 보자. 여기서도 로버트슨이 볼을 잡고 있다.

 

 

아틀레티코는 맨마킹과 거리가 아주 먼 수비를 하고 있다 그들은 완전히 내려 앉아 지역수비를 기반으로 한 4-4-2를 가동했다. 가까운 쪽의 코케는 알렉산더-아놀드를 신경도 쓰지 않으면서 안쪽으로 좁혀 들어와 사울 니게즈와 자신의 빈틈을 최소화한다. 그는 상대보다 동료를 기준으로 위치를 잡았다.

 

아래는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리버풀을 상대한 포체티노의 토트넘 핫스퍼이다.

 

 

맨마킹을 한다는 느낌은 전혀 없다. 물론 특정 지점을 넘어서면 선수들의 위치는 상대의 움직임에 따라 바뀌지만, 위 장면에서 토트넘은 견고한 두줄 수비 라인을 세워 뒀다.

 

실제로 가까운 쪽에 있는 무사 시소코를 제외하면 어떤 선수도 상대와 5미터 이내로 붙지 않았다 그리고 이 장면에서 시소코는 조르징요 베이날둠의 주위를 떠나 로버트슨을 압박하러 간다. 손흥민은 아놀드에게서 30미터는 족히 떨어져 있다.

 

일단 두 가지 면을 나눠서 생각해야 해요. 포체티노는 스카이 스포츠의 먼데이 나잇 풋볼 (역주-이 기사가 나온 당시 포체티노는 무직이었다)에서 비엘사의 압박 방식에 대해 설명했다. 높은 지역으로 압박을 나갈 때는 위험 부담을 떠안게 되죠. 성공하려면 최대한 빠르게 높은 위치에서 볼을 따내야 해요. 하지만 상대가 1차 압박을 벗겨내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생각해 둬야 합니다. 그 때부터 맨투맨을 써야 할지, 아니면 조널 마킹으로 가야 할지를 결정해야죠.

 

비엘사는 전자를 택했다. 다른 대부분의 감독들은 후자를 선택한다.

 

이걸 팀의 전술 플랜의 한 가지 부분일 뿐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사실 경기를 어떻게 치를지 결정하는 것의 반 정도는 이 압박과 수비 방식이 차지한다 팀에게 볼 소유권이 없을 때 전체적인 접근법을 설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맨투맨과 지역 수비 방식 간의 차이는 근본적으로 축구계에서 가장 첨예한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주제들 중 하나이다 (모두가 맨마킹 수비와 스위퍼를 두고 카테나치오를 가동하다가 아리고 사키가 이탈리아에서 플랫 백4를 선보이면서 완전한 지역 수비 체제가 시작된 1980년대 후반에 특히 이런 논쟁이 심화됐었다).

 

물론 비엘사가 전통적인 이탈리안 스타일의 감독이라고 말하는 건 아니다 사실 이데올로기적으로 비엘사는 그 정반대편에 서 있다 해도 틀리지 않다. 그는 항상 최후방에 스페어맨을 두지만, 그의 철학에서 또다른 기본적인 부분은 공격적인 수비 라인의 활용이다. 이러한 개념은 대체로 유럽 최상위권 클럽들이 사용한 전술에 많이 적용된다. 에데르송, 알리송, 마크-안드레 테어 슈테겐, 마누엘 노이어 같은 키퍼들이 높은 수비 라인을 앞에 두고 스위핑을 하는 것을 떠올려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비엘사는 언제나 이런 접근법을 고집했다.

 

그러나, 수비라인을 끌어올리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스타일이 비엘사의 영향 하에 대세로 떠올랐다고 하기는 힘들다. 공격적인 수비 라인과 스위퍼 키퍼는 1970년대 아약스와 네덜란드 전술의 핵심이었다. 그들의 축구는 후대의 바르셀로나까지 전해 내려왔다. 공격적인 수비 방식이 현대 축구의 필수 요소로 남아 있다면, 그건 아약스와 바르셀로나의 유산이요, 펩 과르디올라를 지도했던 크루이프와 루이 반 할의 흔적이다.

 

펩은 공식 석상에서 비엘사에 대한 존경을 자주 표하고 그가 감독 커리어를 시작하기 전 비엘사의 고국 아르헨티나로 축구에 대한 영감을 얻기 위해 떠났던 유명한 이야기는 정말 아름답지만, 펩은 여전히 자신의 코칭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감독으로는 크루이프를 꼽을 것이다. 전술에 관해서 카탈루냐에서는 유명하지 않은 이야기지만 그는 사실 개인 능력보다 팀의 구조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반 할과 더 비슷하다.

 

우연히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시절 반 할은 최근 몇 년 내에 프리미어리그에서 비엘사의 맨마킹 시스템에 비견될 만한 축구를 아주 잠깐 동안이지만 했던 유일한 감독이다. 반 할은 2014 월드컵 초기에도 맨마킹 전략을 사용했다. 이는 네덜란드가 칠레를 2-0으로 누른 경기에서 잘 드러나는데, 해당 경기는 최근의 월드컵 경기들 중 전술적으로 가장 특색 있는 경기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반 할과 비엘사의 제자들 중 가장 적통에 가까운 호르헤 삼파올리의 맨마킹이 중원에서 맞붙었던 인상적인 경기였다.

 

반 할 맨유의 맨마킹은 정말 기괴한 도전이었다. 세 명의 선수가 한 명의 상대를 동시에 쫓아다녔고, 공간이 비면서 중원에는 힘싸움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반 할은 과거에 이런 전술을 쓴 적이 많지 않았는데, 정교한 압박 전술을 지도할 시간이 충분치 않은 국가대표 경기에서 유용하게 쓸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그런 맨마킹을 도입한 이유는 그의 선수들의 전술 이해도에 대한 존중이 부족해서 였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반 할은 비엘사의 전술의 일부를 빌려 썼을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반 할은 자가 결정 능력이 상당히 높았으며, 비엘사가 톱 레벨에서 활용하면서 유명세를 얻었던 것들과 아주 비슷한 전략을 생각해냈다고 할 수 있다. 반 할은 아약스에서 유로피언 컵을 들었고, 바르셀로나에선 라리가를, 바이에른 뮌헨에선 분데스리가를 우승했다.

 

반 할은 조세 무리뉴를 수석 코치로 두고 키워냈고, 이후엔 로날드 쿠만을 감독으로 만들었다. 그는 루이스 엔리케나 과르디올라 같은 감독들도 지도했다. 펩은 기욤 발라그가 쓴 자신의 자서전에 반 할은 (펩의 현 수석코치인) 후안마 리요와 함께 내가 가장 많이 대화했던 감독이라고도 했다.

 

반 할은 비엘사와 닮은 전술을 사용하기도 했지만, 그의 팀들은 현대의 다른 팀들과 훨씬 가까웠다. 심지어 비엘사도 반 할을 우러러봤다. 내가 감독을 시작할 때 나는 언제나 반 할을 보고 싶었어요. 그가 아약스에서 만들어낸 팀은 절대로 잊을 수가 없습니다. 비엘사는 올 시즌 초에 말했다. 그는 디테일에 집중하면서 엄청난 팀을 창조해냈죠.

 

아마 두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현대 아약스 최고의 팀 중 하나를 만들고 바르셀로나에서 은퇴 이후 감독의 길로 들어선 아주 많은 선수들을 지휘했으며 바이언을 진정한 유럽의 강자로 만들어낸 반 할은 비엘사보다 훨씬 더 큰 영향력을 지닌다. 여기에 의구심을 가진다면 비엘사 자신이 가장 먼저 이의를 제기할 것이다.

 

마르셀로 비엘사가 현존하는 감독들 중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가? 물론 비엘사를 정말 존중하지만, 당연히 아니다. 그가 세계 최고의 감독인 것도 아니다. 지난 20년 사이에 축구의 트렌드가 비엘사의 믿음과 비슷한 방식으로 변화했다면, 그 중심에 서 있던 건 반 할 같은 감독들이었을 것이다. 비엘사는 축구계의 중심이 아니었다.

 

실제로, 비엘사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가지는 감독들은 아주 많다. 과거 외국에서 친숙하지 않은 이국적인 전술을 들고 와 한 발 앞서 성공을 맛봤던 아르센 벵거나 조세 무리뉴 같은 감독들과는 달리, 과르디올라와 위르겐 클롭이 프리미어리그에 올 때는 각각 바르셀로나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시절 그들의 영향을 크게 받은 팀들이 이미 잉글랜드에 팽배해 있었다. 펩과 클롭은 자신들의 영향력을 받은 팀들과 맞서야 했다. 반면 비엘사의 방식은 여전히 독특하다.

 

이 글의 논점은 비엘사가 좋은 감독이 아니라거나 (그는 리즈에서 팬들의 오랜 염원을 이뤄냈다) 커리어 내내 자신이 좋은 멘토가 되어 후계 감독들을 길러내지 못하고 (그의 제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알 수 있다) 전술적으로 매력적이지 못하다는 것이 아니다.

 

필자가 말하고 싶은 부분은 그가 전술적으로 매력적인 이유다. 그의 영향력이 커서가 아닌 그 정반대의 이유 때문에 비엘사의 전술은 특별하다. 인플루언서들의 시대에, 비엘사는 아주 다른 모습을 보여왔다 그는 완벽한 아웃사이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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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링크: Michael Cox 2020.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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