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는 어떻게 유로 2020 챔피언이 되었나 [디 애슬레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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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는 어떻게 유로 2020 챔피언이 되었나 [디 애슬레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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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Nick Potts/PA Images via Getty Images

 

이탈리아 대표팀의 운전사는 코베르치아노(역주-이탈리아 대표팀의 훈련장이자 캠프)에서 버스를 끌어내다가 급브레이크를 밟아 차를 세웠다. 사이드 미러를 확인한 그는 크림색 빵모자에 연한 파란색 스트라이프가 있는 자켓을 입은 한 남자가 버스쪽으로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 지안루카 비알리가 또다시 지각을 한 것이다. 그는 하마터면 유로 2020 결승이 있는 주말에 이탈리아 훈련장에 혼자 남아 ‘나 홀로 집에’의 노인 버전을 찍을 뻔했다. 아마 비알리는 그 전 날 생일 파티의 여운으로 출발 시간까지 자고 있었을 것이다. 비알리까지 모든 사람들이 버스에 올라탔다.

 

비알리는 4주 전 버스가 스타디오 올림피코에서 열리는 유로 개막전을 앞두고 대표팀이 묵었던 호텔 파르코 데이 프린시피를 떠날 때에도 마지막에 탑승한 이후로 언제나 떠나려 하는 이탈리아 대표팀 버스의 꽁무니를 붙잡고 가까스로 올라탔다. 로베르토 만치니는 그의 부재를 눈치챘고, 터키 전은 3-0 승리로 끝나면서 뭔가 징크스가 만들어졌다. 만치니는 잠시 시계를 본 뒤 “Dov’e Luca?” – 비알리는 어딨어? 라는 뜻 –라고 말했고, 이런 행위는 나치오날레에게 행운을 가져다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일종의 미신이 생겨났고, 이는 토너먼트가 끝날 때까지 이어졌다.

 

많은 이들이 이번 이탈리아는 notti magiche(역주-마법 같은 밤이라는 뜻을 가짐. 이탈리아가 개최국이었던 90 월드컵에서 4강에 진출하자 팬들이 다 함께 불렀던 노래)를 다시 한번 만들어낼 것이라 예측했고, 홍염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와 자두빛깔의 하늘로 가득 찬 경기장 아래서 안드레아 보첼리가 네순도르마를 부르던 개막 날밤에 그런 느낌은 더욱 강해졌다. 아주리의 플레이스타일과 경기를 보러 온 16,000명의 팬들 – 지난 1년 반 동안 이탈리아 반도에서 열린 축구 경기 중 가장 많은 관중들이 입장한 것이다 – 의 응원 소리가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하면서 1990년 이탈리아가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을 냈다.

 

유로 2020 개막식에서 네순도르마를 열창하는 안드레아 보첼리 (Photo: Valerio Pennicino – UEFA/UEFA via Getty Images)

 

그 다음날 버스는 피렌체로 돌아올 때까지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선수와 스태프들은 코베르치아노의 숙식 책임자 안토니오 갈라르디에게 알 프레스코 디너(역주-이탈리아에서 캐주얼하고 파티 분위기를 내는 야외 식사 방식)를 대접받았다. 만치니 이전 최다 무패 기록을 보유했던 월드컵을 두 번이나 우승한 감독 비토리오 뽀쪼 대부터 대표팀의 업적에 일조했던 경기장을 둘러싸는 러닝 트랙의 커브 부분에 식탁이 설치되었다. 클라우디오 실베스트리, 플라비오 파시니, 엔조 벨라도나 셰프는 스테이크 20 킬로그램 – 모두 토스카나 산이었다 – 과 130개의 소시지, 새우 9킬로그램을 구우면서 바비큐 파티를 열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자신이 발명한 비행 기구를 실험했다고 전해지는 언덕 그늘에 자리잡은 선수단과 코칭스태프 일동은 갈라르디가 실수로 레드 와인 한 잔을 부었을 때 그곳에 갇혀버릴 뻔했다. 갈라르디는 그릴을 굽는 대신 또다른 의식을 시작했다. 선수들은 토너먼트 기간에 바비큐를 할 때면 자리에 앉아 마치 그들이 축구 대회를 준비하는 게 아니라 중요한 성찬식이라도 하는 것처럼 엄숙하게 와인 잔에 손가락을 담그곤 했다.

 

그러나, 만치니의 리더십과 원칙에 관한 믿음은 가장 강력했다. 그는 2018년 가을 마라시(역주-이탈리아의 도시)에서 우크라이나를 상대하면서 조르지뉴, 마르코 베라티, 로렌조 인시녜 등 미드필드와 기술이 뛰어난 선수들을 중심으로 팀을 짜기로 결심했다. “모두가 그의 철학을 배웠죠.” 조르지뉴는 설명했다. “만치니 감독님이 원하는 건 바로 여기, 우리의 머릿속에 있어요. 모든 선수들이 그의 생각을 구현할 수 있는 마음가짐과 스킬 셋을 갖추고 있어요. 팀의 철학은 누구를 쓰느냐 하는 문제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우리는 볼을 뺏어야 해, 우리는 공간을 찾아 앞으로 나아가야 해.’ 누가 출전하든 이 철학을 가슴에 새기고 플레이를 하는 거니까요.”

 

토너먼트 개막 전날, 그 누구도 이탈리아의 하이브리드 포메이션이나 전술에 관한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그럴 이유가 없지 않은가? 이탈리아는 거의 3년 간 패배와 담을 쌓고 상대팀들을 압도하면서 승리하고 있었다. 아르메니아 전 9-1 승리는 1948년 이래로 가장 큰 승리였고, 만치니는 유로 전까지 실점 없이 8연승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가 모이세 킨이나 자신과 이름이 같은 지안루카 만치니를 선수단에서 제외하고 자코모 라스파도리, 라파엘 톨로이를 차출했을 때에도 이의를 제기하는 목소리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이탈리아의 우측 윙어 자리에 페데리코 키에사 대신 도메니코 베라르디를 배치했을 때에도 – 적어도 2주 동안은 – 마찬가지였다.

 

스피나촐라는 그의 전력을 다했다. (Photo: Justin Tallis – Pool/Getty Images)

 

만치니는 과거에 몇몇 이탈리아 감독들이 차용했던 방식으로 신뢰를 받았고 그 믿음은 배반당하지 않았다. 터키를 상대로 3-0 승리를 거둔 개막전은 아주리의 유로 대회 역사상 가장 큰 승리였고, 그들은 4일 뒤 스위스 전에 다시 한번 똑같은 점수로 승점 3점을 따냈다. 레오나르도 스피나촐라는 마치 로마의 도로를 활주하는 스쿠터처럼 왼쪽 측면을 헤집어 놓으면서 유로 2020에서 가장 핫한 풀백으로 급부상했다. 베라티의 핏 문제는 스위스 전 이탈리아의 대회 최고 장면 중 하나를 만들어낸 마누엘 로카텔리가 엄청난 퍼포먼스를 선보이면서 사그라들었다. 그의 팀 동료인 ‘Mimmo’ 베라르디와 아주 장거리의 원투패스를 주고받으면서 나온 첫 골은 섬유 산업이 주류인 소도시 사수올로가 만들어낸 골이었고, 이번 이탈리아는 진짜라는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https://twitter.com/EURO2020/status/1406514906933862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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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p performer: Manuel Locatelli! 🔹 With two goals, 94% passing accuracy and six tackles, Manuel Locatelli's match-winning display for Italy against Switzerland was one of the standout statistical displays of Matchday 2 👏 @FedExEurope | #EUROPZ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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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일스 전 이후 인시녜는 파르코 데이 프린시피의 외곽에서 대형 스피커의 볼륨을 높이고 만치니가 뽑은 선수들 대부분이 태어나기도 전에 지아나 나니니와 에두아르도 베나토가 발매해 이탈리아 90 월드컵의 사운드트랙을 지배했던 Un’estate Italiana를 모든 선수단이 노래하도록 하면서 선수들을 이끌었다. 웨일스 전을 1-0 승리로 끝낼 때, 유로 2020은 Il Mancio(역주-만치니의 별명)의 마음에 확실히 남는 대회가 되었다.

 

녹아웃 스테이지 진출이 확정되자, 만치니는 많은 선수들에게 출전 기회를 부여했다. 그는 8명의 선수들을 새로 기용하고 교체 카드 다섯 장을 – 살바토레 시리구, 가에타노 카스트로빌리, 프란체스코 아체르비, 브라이언 크리스탄테, 라스파도리 – 모두 사용함으로써 23인 선수단에서 22명을 경기에 내보냈다. 거의 모든 선수들이 언젠가 손주에게 자신이 이탈리아에서 열린 이탈리아 대표팀의 메이저 대회에서 뛰었다고 자랑스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자신은 이탈리아 90 월드컵에서 벤치를 벗어나지 못했던 만치니의 개인적인 경험과 후회는 심플하지만 감동적인 선수단 운영을 만들어내면서 선수들에게 절대로 잊지 못할 기억을 선사했다.

 

결국, 웨일스는 은행가 출신 세트피스 스페셜리스트 지아니 비오(역주-이 사람에 관한 애슬레틱 기사가 따로 있다. 이탈리아의 세트피스 작전은 거의 지아니 비오가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되는데, 4,830개의 루틴을 고안했다고 한다)의 비책에 당했다. 빈센트 반 고흐를 좋아하는 라틴 학자이자 미술광 (역주-페시나는 경제학과에 등록했지만 예술과 디자인을 좋아하기로 유명하다. 인터뷰에서 이탈리아 대표팀을 고흐에 비유하기도 했다) 마테오 페시나는 그 골을 통해 유로 2020에서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릴 수 있었다. 로카텔리가 베라티 대신 출전해 터키와 스위스 전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던 것처럼 바렐라의 대체 선수로 나와 훌륭한 퍼포먼스를 보여준 아탈란타 소속의 미드필더 페시나는 처음부터 유로 2020 스쿼드에 차출된 선수는 아니었다. 예비 명단에만 올라 있던 그는 스테파노 센시와 로렌조 펠리그리니의 부상으로 대회 전날에 추가 소집됐다. 사르데냐의 한 바에서 경기를 보던 마테오의 할아버지는 그의 손자가 조 모렐을 뚫어내는 경기의 유일한 골을 득점하자 술을 무료로 대접받았다.

 

이런 이야기는 페시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오스트리아는 16강 경기에서 이탈리아를 궁지에 몰았다. 마치 코베르치아노에서 인시녜가 치로 임모빌레를 겁줬을 때처럼, 이탈리아 사람들도 걱정했다. “난 항상 정신을 바짝 차리고 다녀야 해요.” 임모빌레는 말했다. “로렌조는 정말 작아서 어디든 숨을 수 있거든요. 어느 날 점심을 먹고 숙소로 돌아오고 있었어요. 나는 베라티의 방으로 들어갔고 인시녜가 작은 옷장에서 튀어나왔죠. 그는 나를 깜짝 놀래켜요.” 마르코 아르나우토비치가 웸블리 경기에서 오스트리아에게 리드를 가져다줬을 때에도 그랬을 것이다. 신의 은총으로(Grazie a dio) VAR의 스튜어트 애트웰이 골 장면을 돌려보고는 오프사이드를 선언했다.

 

스위스 전 부상으로 이탈한 캡틴 조르지오 키엘리니가 빠진 이탈리아는 패닉 상태로 후반전을 들어갔고 프랑스나 네덜란드처럼 16강에서 떨어져버릴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만치니는 조커를 투입을 노렸고 키에사와 페시나를 집어넣었다. 그들은 이탈리아의 승리를 가져오는 두 골을 득점했다. 비알리는 계단을 내려와 키에사의 득점에 기뻐하면서 40년도 더 된 친구 만치니를 껴안았다. 만치니는 그 영상을 돌려보면서 ‘해방감’을 느꼈다고 표현했다.

 

만치니와 비알리는 오스트리아 전 키에사의 득점을 보고는 서로를 꼭 껴안았다. (Photo: Chris Brunskill/Fantasista/Getty Images)

 

키에사는 움브리아 출신 스피나촐라의 어시스트를 받아 코로 볼을 컨트롤하면서 만들어낸 결승골을 기록했다. ‘스피나’는 이탈리아어로 가시를 뜻하는데, 만약 당신이 아주리를 상대했다면 그가 뛰는 쪽은 가시에 찔려 피를 흘리는 것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이탈리아는 8강에서 피파 랭킹 1위의 벨기에를 제압하면서 만치니의 아주리가 탑 팀들을 만나기 전까지는 우승 후보로 평가되면 안 된다는 회의론자들을 잠재웠다.

 

이탈리아는 뮌헨에서 왕좌의 게임에 나오는 브라보스의 암살자 길드보다 다양한 얼굴을 보여줬다. 우리는 새로운 이탈리아를 보았고 – 바렐라의 득점으로 이어진 베라티의 압박이 이를 잘 보여줬다 – 고전적인 이탈리아도 보았다 – 그 어떤 토너먼트에서도 짜릿한 수비를 보는 즐거움을 지울 수는 없다. 그들의 수비는 완벽한 퍼포먼스로 대회에 돌아온 36살의 키엘리니의 복귀와 맞물려 매분 매초가 흥미진진했다.

 

스피나촐라가 발뒤꿈치로 로멜루 루카쿠의 슈팅을 정말 깻잎 한 장 차이로 걷어내는 것을 본 키엘리니는 그의 목을 움켜쥐고 당장이라도 뺨에 키스를 해줄 준비가 된 것 같은 눈빛으로 스피나촐라를 바라봤다. 키엘리니 같은 수비수에게 실점을 막는 것은 골을 넣는 것보다 더 큰 의미를 갖는다. 안타깝게도 헤르메스의 날개 달린 신발을 신은 것 같은 플레이를 보여주던 스피나촐라는 토르강 아자르를 지나 공을 향해 달려가다가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그의 왼발 아킬레스건의 힘줄이 끊어진 것이다.

 

이후 21분 동안, 이탈리아는 모든 수를 다 쓰면서 시간을 끌었다. 그러나 스피나촐라의 유로 시계는 멈춰버렸다. 이탈리아 대표팀은 그를 둘러싸고 행운을 빌어줬다. 다음날 아침 코베르치아노에서 모든 선수들이 그를 안아줬고, 스피나촐라는 선수단에 ‘arriverdverci(역주-굿 바이)’를 남기고 수술을 받기 위해 핀란드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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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은 그들이 처음부터 목표로 했던 것을 이뤄내겠다고 맹세했고, 스피나촐라가 여전히 그들과 함께하길 원했다. 스피나촐라의 여권에는 이탈리아가 결승에 진출하면 직접 경기를 보러 올 잉글랜드 행 티켓이 끼워져 있었고, 선수단에는 Notti Magiche와 Eros Ramazzotti의 Piu Bella Cosa Non C’è에 더해 버스와 비행기, 그리고 경기장에서 부를 새로운 노래가 추가되었다. 그 노래의 가사는 “Ole, Ole, Ole, Oleeeee. Spinaaaaaa, Spinaaaaaa!” 가 전부였다.

 

승부차기로 4강의 승자가 가려지자, 인시녜는 스피나촐라의 저지를 들고 다시 한번 선수단을 노래의 물결로 이끌었다. 나폴리탄은 베라티와 함께 그들의 옛 페스카라 동료 임모빌레를 놀래키는 것 이상의 컬트적인 팀 내 위상을 갖게 되었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이번 유로를 회상할 때, O Tiraggir – 벨기에 전 인시녜가 보여준, 좌측면에서 중앙으로 치고 들어와 먼 포스트를 향해 감아차는 골을 뜻한다 – 는 그들의 기억 속에 남는 장면 중 하나일 것이다.

 

인시녜는 스페인 전을 승리로 마무리한 후 스피나촐라의 저지를 입었다. (Photo: Claudio Villa/Getty Images)

 

인시녜는 4강에서 sette, 즉 seven을 적중시키는 데 실패했다 – 이탈리아인들은 골대의 탑 코너를 가리켜 sette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의 아웃프런트 패스는 임모빌레를 거쳐 키에사의 환상적인 골을 만들어내는 데 일조했다. 키에사는 그의 아버지 엔리코처럼 유로에서 이탈리아를 위한 골을 득점했다. 다니 올모의 슛을 막아낸 뒤 기지를 발휘해 빠르게 볼을 굴려준 돈나룸마의 손에서 번개처럼 빠른 역습이 시작되었고, 그는 이후 승부차기에서도 아주 큰 역할을 했다.

 

보누치는 볼에 바람을 넣으면서 이 스페인 전이 ‘내 커리어 역사상 가장 힘든 경기’였다고 털어놓았다. 스페인은 점유율 70%로 경기를 장악했고 거의 1000개의 패스를 주고받았다. 베라르디가 이탈리아의 리드를 배로 늘릴 수 있었던 기회를 날려버리고 알바로 모라타가 스페인의 오랜 기다림에 부응하는 골을 만들어내자, ‘gol mangiato, gol subito – 기회를 놓치면, 실점하는 법이다’라는 오래된 격언이 그대로 실현되는 듯했다.

 

아킬레스건에 깁스를 한 채로 소파에 앉아 경기를 지켜보던 스피나촐라는 자신이 경기를 뛸 때보다 더 큰 긴장감을 느꼈다. 특히 경기가 승부차기까지 흘러갈 때에는 더욱 그랬다. 로카텔리가 첫 기회를 놓치자, 그 어느 때보다 불안감이 커졌다. 그가 PK를 놓치고 중앙선으로 돌아왔을 때, 키엘리니는 그의 팔을 잡고 남은 승부차기에 함께 하게 했다. 그는 걱정할 거 없다고, 모든 게 잘 될 거라고 말했다. 키엘리니가 동전 던지기를 할 때 조르디 알바와 신경전을 벌이며 그를 그렇게 작아 보이게 만들었는데, 어찌 그러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 후 완벽한 경기를 치른 올모가 스페인의 첫 페널티킥을 관중석으로 날려버렸고, 돈나룸마는 모라타의 슈팅을 막아냈다.

 

오른쪽을 보아라. 키엘리니는 조르지뉴의 PK가 성공하고 난 뒤에도 로카텔리를 놓아주지 않고 있다. (Photo: Carl Recine – Pool/Getty Images)

 

이제 이탈리아는 조르지뉴의 오른발에 믿음을 걸게 되었다. 코베르치아노의 교수로 알려져 있는 챔피언스리그 위너, 조르지뉴는 압박을 받는 때에도 침착함을 유지하는 법에 대한 명강을 펼쳤다. 조르지뉴의 뜀박질과 스킵, 점프는 마치 유로 2000 네덜란드 전 프란체스코 토티의 쿠키아이오(역주-페널티킥에서 일부러 속도를 늦춰서 차는 슛. 칩샷)나 유로 2012 잉글랜드 전 안드레아 피를로의 파넨카처럼 정말 대담하고도 멋있었다. 보누치는 골대 뒤로 달려가 관중들과 함께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는데, 그가 다시 돌아서 경기장으로 들어가려 하자 경호원이 그를 난입 관중으로 착각하고 제지하는 사소한 해프닝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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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was funny last night. Bonucci ran towards the crowd to celebrate. A steward thought he was a fan and tried to stop him getting back on the pitch. He gave her a hug @SonySportsIndia https://t.co/JpDu2wGU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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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중들을 통제하는 게 어려웠던 만큼, 한 팬이 환희에 찬 이탈리아 선수들 사이에서 계속 포즈를 취하는 것도 막을 수가 없었다. 사르데냐 출신으로 런던에서 웨이터이자 가게 점원으로 일하고 있는 피에르쟈니 피사누는 광고판을 넘어와 깜짝 놀란 알베리고 에바니 코치와 포옹을 나눴고 베라티와 어깨동무를 했다. 베라티는 그가 인시녜인 줄 알았다가 다시 쳐다보고는 “미친, 당신 누구야?”라고 외쳤다.

 

이탈리아는 다음날 아침 5시에 코베르치아노로 복귀했다. 선수들은 온몸에 힘이 없었고, 노래를 열창하느라 목도 나간 상태였다. 페데리코 베르나르데스키가 선수들에게 맛있는 코르네토 알라 크레마 – 바삭한 크루아상 안에 부드러운 크림을 채워 넣은 디저트 – 를 갖다 주는 것은 이제 관례가 되었고, 선수들은 배고픈 채로 방에 들어가지 않아도 됐다. 모든 이들이 숙면을 좀 취한 뒤 코베르치아노의 수영장에 들어갔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시절에 레알 마드리드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일했던 퍼포먼스 디렉터 발테르 디 살보의 감독 하에 선수들은 풀장에서 누들 튜브 위에 누워 피로를 풀었다. 물리치료사들은 지압과 안마를 해주면서 선수들이 회복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줬다. 대회 기간 동안, 자려고 하는 선수들을 포착해내는 여러 인스타그램 스토리가 올라왔다.

 

이탈리아 선수들은 4강전 승리 이후 수중 회복 세션을 받았다. (Photo: Claudio Villa/Getty Images)

 

그러나 선수들이 눈을 뜨면, 그들은 이 현실이 꿈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탈리아는 네번째 유로 결승에 진출했다. 경기 분석가 안토니오 갈라르디와 시메오네 콘트란은 스탯밤 데이터를 정리하고 잉글랜드의 장점과 단점을 담은 클립을 따서 만치니가 비디오 세션에서 틀어줄 영상을 만들었다. 만치니는 스카우터 마르코 스카르파와 마우로 산드레아니의 보고서도 전달했다. 비오의 세트피스 루틴 4,830 가지 중 몇 개는 훈련에서도 적용됐다. 잉글랜드 전의 승패가 아주 사소한 디테일의 차이로 갈릴 수도 있다는 확고한 믿음을 가진 이탈리아 대표팀은 그 무엇도 운에 맡기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갈라르디는 마지막 바비큐를 구웠다. 선수들은 다시 한번 와인잔에 손가락을 담갔고 루튼 공항으로 날아갈 준비를 했다. 그들은 임모빌레와 안드레아 벨로티가 플레이스테이션 토너먼트를 하면서 자유시간을 보내고 있던 토트넘 핫스퍼의 숙소에서 결승 전날 밤을 지낼 예정이었다.

 

키엘리니는 사르데냐에서 선수들을 불러모아 대회 전부터 했던 이야기를 반복했다. 이탈리아의 성공에 숨은 비밀은 ‘낙천적인’ 마음가짐과 긍정적인 종류의 ‘미침’일 것이다. 웸블리의 그런 분위기 속에서, 지고 있는 상황에 경기를 뒤집고 이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광기였을지도 모른다. 이탈리아는 유로에서 처음으로 리드를 내줬고 전반전에는 축구가 결국 집으로 돌아오는 듯했다. 그러나 만치니의 용병술은 우승컵을 이탈리아의 손아귀로 가져다줬다. 그는 잉글랜드를 상대로 중원에서 좀 더 피지컬로 싸워줄 수 있는 브라이언 크리스탄테를 바렐라 대신 넣었고, 그가 현재 로마에서 맡는 롤보다 이전 아탈란타에서 수행했던 것에 가까운 역할을 줬다. 임모빌레 대신 베라르디를 투입해 펄스 나인으로 전환하는 선택은 아주리를 예측할 수 없게 만들었고, 잉글랜드는 주도권을 빼앗겼다.

 

비오가 고안한 코너킥에서 보누치의 동점골로 이어지는 패스를 흘려준 선수가 바로 크리스탄테였다. 보누치는 득점 이후 광고판 위에 올라가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양팔을 들어올리는 세레머니를 했다. 키에사와 인시녜는 부상으로 쓰러지면서도 팀의 우승을 위해 헌신하는 것처럼 보였다. 더 이상 이탈리아를 향한 바람은 불지 않았지만, 잉글랜드도 경기를 가져가진 못했고 키엘리니가 상대의 셔츠를 잡아당기고 볼을 걷어내면서 다시 한번 승부차기에 돌입했다. 키엘리니는 알바에게 했던 신경전을 걸지 않고도 동전 던지기에서 이겼지만, 벨로티와 조르지뉴의 페널티킥이 조던 픽포드에게 막혀버렸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영웅으로 떠오른 키퍼는 바로 돈나룸마였다. 그는 PSG가 왜 그에게 1200만 유로를 준비해줬는지 보여주면서 그의 진가를 증명했다.

 

아주리가 유로를 마지막으로 우승했던 1968년처럼, 부카요 사카의 슈팅이 그의 손에 막히는 소리가 웸블리 경기장에 울려 퍼졌다. 유로 68의 우승은 2년 전 잉글랜드가 개최한 월드컵에서 박두익(역주-북한 축구 레전드)의 북한에 굴욕적인 패배를 당한 것을 완전히 원상 복구하는 위업이었다. 이번 유로 우승은 60년 만에 처음으로 월드컵 본선에 참가하지 못했던 대참사를 겪은 이탈리아가 부활했음을 보여줬다. 선수단은 둥그렇게 모여 섰다.

 

보누치와 눈물이 많은 키엘리니는 2012년 키예프에서 맛봤던 쓴맛을 잊을 만한 성공을 이뤄냈다. 만치니의 코치 다니엘레 데 로시는 선수들의 신발을 닦아주던 칫솔 ‘Spazzolino’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고인이 된 장비 담당자의 가는 길에 2006 월드컵에서 받은 메달을 묻은 뒤로 또 하나의 우승 메달을 받았다. 스피나촐라가 목발을 짚은 채로 가장 먼저 단상 위로 올라가 UEFA의 회장에게 인사를 했고 그가 응당 받아야 할 찬사를 받았다.

 

비알리의 이야기 역시 계속해서 감동을 준다. 토너먼트 전부터 그가 앞으로 다가올 경기들을 상상하면서 하늘을 바라보고 가장 달콤한 웃음을 짓는 장면은 카메라에 많이 잡혔다. 2년 전 암 투병으로 고생했던 비알리는 그의 시련을 전쟁이 아닌 여행으로 표현하면서, ‘원치 않았던 동반자’를 만났다고 했다. 그의 여정은 그가 다시 한번 만치니를 포옹하면서 끝이 났고, 둘은 조국이 반세기 만에 되찾은 트로피를 따낸 감격에 젖었다. 비알리를 비롯한 삼프도리아 선수 출신 대표팀 스태프들은 웸블리에서의 결승전을 바르셀로나 전 패배로 끝낸 1992년의 악령을 떨쳐내고 마침내 안식처를 찾을 수 있었다.

 

4강 스페인 전 승리 이후 선수들을 단합시키는 만치니 (Photo: Claudio Villa/Getty Images)

 

만치니는 이탈리아 축구라는 판테온에서 그의 위상을 새로이 드높이게 되었다. 그는 이미 삼프도리아가 그들의 유일한 스쿠데토를 따는 데 최전선에 서 있었고, 라치오를 70년대 이후 처음으로 리그 최정상에 올려다 놓으면서 우승을 가져다주는 역할을 했었다. 만치니는 인테르에서 18년 간의 리그 우승 실패라는 아픔을 끝냈고, 맨체스터 시티를 1968년 – 이탈리아가 유럽의 왕이 되었던 바로 그 연도이다 – 이후 처음으로 잉글랜드 챔피언 자리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이번 이탈리아의 유로 우승은 만치니에게 진정한 성취감을 안겨준다. 그는 클럽 커리어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영광을 누렸지만, 이탈리아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하지만 오늘부터는 아니다. 결승 전날 밤, 만치니는 “내일 나는 내가 선수로서 갖지 못했던 만족감을 감독으로서 채우려 한다”라고 말했었다.

 

그는 이제 과업을 완수했다. 그리고, 바닥을 찍었던 이탈리아는 유럽 최정상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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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링크: James Horncastle 2021.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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