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리그, 프레임을 잘못 짜도 한참 잘못 짰다 [FA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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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리그, 프레임을 잘못 짜도 한참 잘못 짰다 [FA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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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동안 전세계의 축구를 들썩였던 슈퍼리그 창립은 사실상 실패로 막을 내렸습니다. 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유벤투스를 제외한 아홉 클럽이 모두 탈퇴 성명을 냈고, 이 상황에서 새로운 리그를 만드는 건 사실상 불가능해 보입니다.

 

슈퍼리그의 옳고 그름을 떠나, 이번 개혁이 수포로 돌아가면서 유에파의 권력은 더욱 커지고 빅클럽들의 이익을 취하려는 변화는 힘들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과연 이 슈퍼리그 제안의 문제는 무엇이었을까요?


여러분은 여론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이미지라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사람들은 사건의 자세한 내막까지 알 수 없습니다. 아니, 그렇게까지 파고드는 걸 원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상황에서 이미지를 상대보다 빠르게 선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는 선이고, 쟤는 악이다라는 이미지를 먼저 씌워버리면 그걸 탈피하기가 매우 힘들다는 거죠. '선동은 문장 한 줄로도 가능하지만 그것을 반박하려면 수십 장의 문서와 증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을 반박하려고 하면 사람들은 이미 선동당해 있다'라는 괴벨스의 말도 있지 않겠습니까? 사실 괴벨스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뇌리에 '괴벨스가 이런 말을 했구나'라는 생각이 박히고 이것이 날조라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못하고 있는 것, 이것 자체가 저 말에 담긴 의미를 그대로 전달한다고 생각합니다.

 

근본적인 이미지가 완전히 박혀버리면 거기서 벗어나는 것은 굉장히 힘듭니다. 최근 축구판에도 이를 잘 보여주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바로 맨유와 토트넘 경기에서 손흥민이 맥토미니에게 얼굴을 가격당하자 맨유의 거의 모든 사람들을 인종차별자로 만들어버린 것이죠.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말이 길어지지만 '공영방송' KBS가 9시 뉴스에서 일반적인 인터뷰 신경전을 시도한 솔샤르 감독을 보고 '솔샤르 감독에게도 인종차별을 당했는데요'라는 멘트로 아예 못을 박아버린 것만 봐도 쉽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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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 오해하실까봐 추가적으로 넣는 내용인데, 절대로 실제 인종차별을 자행한 강성 팬 그룹이나 더티한 파울을 저지른 맥토미니를 옹호하고 손흥민을 깎아내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현재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손흥민과 관련되었다는 이유로 하지도 않은 인종차별에 까이는 상황이 우습다고 생각해서 예시로 든 것뿐입니다. 인종차별은 무조건 사라져야 하는 극악무도한 행위가 맞고, 인종차별자들은 당연히 매장되어 마땅합니다.

 

저는 울브스의 팬으로서 슈퍼리그가 만들어지면 최상위권 빅클럽들이 너무 그들만의 리그에 집중해버릴 것을 걱정하기도 했으나, 축구팬으로서 볼 때는 축구의 인기가 더욱 높아지고 팬들은 수준 높은 경기들을 끊임없이 제공받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기에 딱히 슈퍼리그에 대한 찬성이나 반대 의견은 크게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언론으로 흘러나오는 소식들을 지켜보면서, 슈퍼리그측의 프레임 짜기와 이미지 설정은 너무나도 아쉽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슈퍼리그가 잘못 짠 프레임과 유에파와의 비교, 그리고 제가 생각하는 대안들을 써보겠습니다.

 

※ 이 글은 슈퍼리그나 유에파의 진짜 의도가 무엇이었고, 사실은 어떠했는지를 다루지 않습니다. '슈퍼리그가 만들었어야 할 이미지, 구도, 프레임은 이랬다, 슈퍼리그는 이런 방식으로 여론을 이끌었어야 한다'를 말하는 글입니다.

 

#1. 유에파에게 빼앗긴 '착한' 이미지

앞서도 말했듯이 슈퍼리그는 근본적으로 빅클럽들이 유에파에 대한 불만을 가지면서 벌어진 축구판의 개혁 시도였습니다. 그리고 슈퍼리그를 반대하는 분들도 유에파의 문제가 크다는 것에는 다들 동의하실 겁니다. 네이션스리그로 대표되는 살인적인 일정과 자본주의적인 운영이 대표적이죠. 새로운 챔피언스리그 개혁안도 (물론 이 내용은 아넬리 전 ECA 회장, 현 슈퍼리그 부회장이 칭찬하기도 했고, 챔스 입장에서도 빅클럽들의 불만을 줄여주기 위해 고안한 것이었습니다) 많은 비판을 받고 있죠.

 

슈퍼리그는 이를 집요하게 이용해야 했습니다. 상황이 흘러가면 갈수록 '슈퍼리그는 돈에 눈이 먼 빅클럽들의 미친 행보이고, 우리 유에파는 스몰클럽들과 유럽의 모든 팀들을 대표한다'라는 뉘앙스의 인터뷰를 유에파의 알렉산드르 세페린 회장이 많이 했는데, 유에파의 이중적인 태도를 비판했어야죠. 맨시티의 펩 과르디올라 감독은 "레반도프스키는 챔피언스리그 8강에 나오지 못했다. 유에파의 네이션스리그에서 부상을 당했기 때문이다."라며 그들을 깠습니다. 이런 모습이 슈퍼리그에서도 나왔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빅클럽 외에 비교적 인기가 적은 팀들의 사다리를 걷어차버리는 행위라는 비판이 나왔을 때, 빅클럽들이 돈만 보고 자국 리그는 아예 버린다는 비평이 쓰여질 때, 팬들의 의견은 온데간데 없다는 트윗들이 올라올 때 슈퍼리그는 자신들이 악역이 아니라는 걸 보여줬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악역을 유에파에 넘겨줬어야 합니다.

 

#2. 스포츠의 낭만과 현지팬을 무시하는 처사

아무리 프로스포츠가 발전해 빅클럽들은 이제 대기업 같은 시스템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까지 모두 비즈니스로 점철되어 있다면 팬들은 더 이상 축구를 보고 팀을 응원할 이유가 없습니다. 대다수의 팬들에게 축구는 취미이지 직업이 아닙니다.

 

이러한 팬들의 반대 역시 슈퍼리그 무산에 아주 큰 역할을 했죠. 사실 중소 클럽 팬들은 슈퍼리그에 반대하는 게 기정사실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우리 팀을 버리고 다른 큰 리그를 만들어서 자기들끼리 돈 벌어먹고 산다는데 팔 벌리고 환영할 사람은 없겠죠.

 

문제는 슈퍼리그 참가팀의 팬들마저 이 제안에 반대했다는 겁니다. 'Created by the poor, Stolen by the rich' 라는 걸개의 사진이 수만번 공유됐고, 클럽의 역사와 전통을 버리고 플라스틱 팬과 돈만 보는 구단주들을 비판하는 여론이 심화됐죠.

 

적어도 슈퍼리그에선 자팀 팬들은 포섭했어야 합니다. 자기 팬들의 지지도 받지 못하는 리그가 어떻게 성공할 수 있을까요. 페레즈가 주장한 '빅클럽들도 이제 곧 망할 것이다, 축구의 인기가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다'라는 것을 보다 적극적으로 피력하여 팬들을 설득하고 슈퍼리그는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라는 것을 인지시켰어야 합니다.

 

그러나 빅클럽들은 뭘 했죠? 팬들에게 입장문이나 성명문을 내지 않는 그들의 태도는 현지팬들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고, 지켜보다 보니 여론이 너무 안 좋으니 부랴부랴 사과문이나 올리는 대응은 아주 환상적이었습니다.

 

물론 슈퍼리그는 자본주의에 의해 고안된 것이 맞습니다만, 페레즈와 위원회는 '몰락해가는 축구판 전체를 살린다'라는 이미지를 더욱 강하게 씌웠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3. 급진적인 진행으로 인한 중도층의 반발

사실 슈퍼리그 측에서는 이렇게 여론의 반대가 심할 거라고 예상하진 못했을 겁니다. 지난 12월 BBC 여론 조사에 따르면 슈퍼리그에 찬성하는 의견도 약 30%는 됐으니까요. 그러나 그 당시 사람들이 생각하는 슈퍼리그의 모습과 페레즈의 슈퍼리그 사이에는 큰 간극이 존재했고, 찬성했던 팬들 역시 이렇게 갑작스럽게 일이 진행될 거라고 생각하진 못했을 겁니다.

 

사실 판을 완전히 뒤엎는 개혁은 그것의 옳고 그름을 떠나 아주 큰 반발을 일으킬 수밖에 없습니다. 슈퍼리그는 기존 유럽 축구를 완전히 갈아엎는 제안이었기에 내용 자체도 아주 급진적이었고, 기존에 어떠한 징조나 이야깃거리도 없었기에 더욱 급격했습니다. 반발 여론도 이와 비례해서 아주 컸다고 생각해요. 만약 이런 개혁이 성공했다면 위화도 회군이 됐겠지만, 실패하면 갑신정변이 되는 거죠.

 

개인적으로 유에파의 새로운 챔피언스리그 개편안이 나온 뒤에 슈퍼리그를 발표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챔스 개편안은 여러 클럽들의 경기수를 크게 늘리는 스위스 모델인데, 만약 개편안이 먼저 발표됐다면 이 역시 큰 반발을 불러왔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 여론을 이용해서 슈퍼리그는 '우리도 경기수는 비슷하지만, 더욱 알찬 빅클럽들의 경기를 늘려 축구판의 흥미를 높이고 재정도 충원하겠다'라는 주장을 폈으면 좀 더 유리한 상황을 차지할 수 있었을 겁니다.

 

#4. 공개적인 경쟁에 반하는 강등 없는 시스템

사실 유에파에 착한 프레임을 넘겨주고, 현지팬들의 비판을 받고 하는 모든 것들은 이 4번의 영향도 아주 큽니다. 창설 멤버 열 다섯 클럽은 영구적으로 강등되지 않고 슈퍼리그에 잔류한다. 이러한 형태는 팬들로 하여금 슈퍼리그는 적폐라는 인식을 그대로 심어줬습니다.

 

혹자는 말할 겁니다. '아니 총대 매고 슈퍼리그 창설하는 클럽들인데 이 정도 혜택도 못 받으면 너무 위험부담만 떠안으라는 거 아니야?' 'NBA, MLB 같은 미국 스포츠 리그들은 다 이런 식으로 리그 운영하는데? 거기서 재미가 떨어지거나 스포츠 정신을 해친다는 소리는 안 하잖아'.

 

맞습니다. 너무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저는 비춰지는 모습에 대해서 말하는 겁니다. 리스크를 떠안고 슈퍼리그 창립에 참여한 클럽들에게는 안전 장치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안전 장치가 너무 노골적으로 고인물 리그를 시사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미국 리그도 이런 방식으로 잘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바라보는 곳은 미국이 아니라 유럽입니다. 어느 체제가 우월한지를 떠나서, 오랜 시간 동안 승강제를 통해서 잘하는 팀은 승격, 못하는 팀은 잔류라는 기본 시스템을 차용해왔던 유럽 리그에는 당연히 반발 심리가 클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슈퍼리그에 들지 못하는 중소 클럽들은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으면, 슈퍼리그 측은 '일단 우리가 축구판을 좀 키워두고 있을 테니 그 클럽들도 선수를 팔아서 이적료를 받으면 된다. 자국 리그에도 지원금을 줄 것이다' 같은 말 밖에 할 수가 없는데, 이 부분은 유에파가 '우리는 그냥 그런 클럽들이 실제로 챔피언스리그에 참가할 수 잇는 기회를 줍니다'라고 하면 끝이 나죠.

 

승강제에 예외를 두는 규정은 슈퍼리그가 여론전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는 제 무덤을 파놓은 겁니다.


슈퍼리그에 대한 이야기는 언젠가 다시 나올 겁니다. 그 시점과 방식은 지금과 많이 다른 모습이겠지만요. 모두가 좋아하진 않더라도 결사반대하진 않을 만한 제안이 나오길 기대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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